세상에는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수많은 공간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평생동안 살아가면서 접하는 공간은 전체의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임철우 작가의 소설 의 주요 배경이 되는 붉은 방도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할 뿐더러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오기섭과 최달식이다. 전체를 여덟파트로 나누어 두 주인공이 서로 교차하면서 그 파트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지금부터 첫파트부터 시작하여 글을 읽으며 내가 떠올렸던 순간순간의 생각들과 주인공의 심리분석 및 권력(고문)과 인간의 불안에 대하여 서술해 보고자 한다.
▷하나
학교 선생님인 오기섭은 늘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생활에 대한 갑갑함과 지루함으로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이다. 입버릇처럼 되어버린 한심스런 푸념과 한숨에서 지치고 의욕없는 그의 모습을 알 수 있다. 15층에 사는 그는 출근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오늘따라 딱 맞추어 엘리베이터가 그의 눈앞에서 열린다. ‘오늘은 운수가 좋은걸. 뭔가 잘 풀리려나보다’ 하고 그는 생각한다. 어쩐지 이 대목을 보고 운수 좋은 날이 떠올랐다.
출근길에서도 그는 여전히 푸념을 늘여놓으면서도 시계를 확인하고, 두 다리를 재촉한다. 지치고 불만스럽지만 하지 않을 수 없고 해야만 하는 것을 알기에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우리네 모습과 참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우람한 체격의 두 사내가 나타나 그를 결박하고 강제로 승용차에 태운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며, 이유도 모른 채 결박당한 그의 불안하고 두려운 심리상태가 호흡곤란과 심장박동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차에 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사내의 험악한 표정과 힘 앞에 한순간 반항할 힘과 의욕이 사라진다. 우리 인간이 부당한 이유에서도 나보다 강한 사람 또는 권력 앞에 얼마나 약해지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차에 태워지면서도 그는 가방을 연신 챙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방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필요한 것이므로 그에게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식을 안겨줌과 동시에, 인간이 불안상태에서 어떤 하나에 집착하여 편안함을 느끼는 도구로서의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차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항변과 거부의 몸짓을 시도해보려 하지만 사내의 험악한 인상과 커다란 주먹을 보며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는 이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떠올리다가 의식 밑바닥에 어두운 흉터로 도사리고 있던 월북했던 큰아버지를 떠올리며 순간 두려움을 느낀다. 차에서는 사내들이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웃고 떠든다. 그러나 이미 그들에게서 두려움을 느낀 오기섭은 사내들의 평범한 대화조차도 생경하고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오직 자신의 상황만 변한 것 같다. 불길한 예감과 아득한 절망감을 느끼며 평범했던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대해 절실한 애정과 그리움을 난생 처음 확인하게 된다.
▷둘
최달식의 이야기로 넘어오게 된다. 그의 직업은 심문관이다. 목욕탕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최근에 심문했던 녀석을 떠올리며 그는 생각한다. ‘츳, 병신 같은 새끼. 어차피 처음부터 그렇게 끝나도록 다 되어 있는 건데, 그걸 모르구.’ 이 대목을 보며 참 안타까움을 느꼈다. 끝이 결정되어 있다는 말은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맥빠지고 허탈하다. 이 말은 심문받는 사람의 의지와 소신에 상관없이 자신들에 의해 지어진 결말에 결국 맞추고야 만다는 말과 같다. 나도 모르게 오기섭의 앞날이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최달식은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맥주집에서 옆에 앉았던 여자에게 하는 행동이나 이층에 세들어 사는 사람들이 키우는 발바리가 짖을 때 보였던 말과 행동에서 쉽게 흥분하며 잔인하고 폭력적인 최달식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세들어 사는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는 보습에서 권위의식이 강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아픈 가정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자식들에게만은 누구보다 관대하고 자상한 사람이지만 가끔 손찌검을 할 때가 있는 그는 뇌막염으로 죽은 큰아들 한수가 자신이 휘두른 주먹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믿고 무거운 죄책감을 지니고 살아간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