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단속사회_엄기호
- 엄기호 지음, 『단속사회』, 창비, 2014
우리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학자들 등은 사람들은 점차 개인화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말 우리는 서로 사회라는 조각 중 하나로 ‘나’라는 세계 속에 갇혀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에 우리는 너무나 많은 크고 작은 공동체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 오히려 나는 24시간 동안 학교, 기숙사, 집이라는 일상생활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겨를이 없다. 학교에서는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기숙사에서는 516호의 한 일원으로, 집에서는 딸 또는 누나로서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 가끔은 이런 반복되는 나의 삶에서 적지 않은 회의감과 압박을 느낀다. 과연 우리는 정말 지금 사회를 ‘개인’ 사회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함’이 아니라 ‘쉼’을 나는 갈망한다.
우리는 항상 인간관계에서 늘 조심스럽다. 특히 상대가 타자라면 더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말을 조심하게 된다. 수많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평생을 말이나 행동거지에 신경 쓰며 하루하루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의 시간, 고독한 시간을 더욱 갈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서 그저 있을 수 있는 권리, ‘쉼’ 말이다.
우리는 이 ‘쉼’을 쟁취하기 위해서 관계를 단절하게 된다. 관계들을 하나둘 정리하면서 우리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관계의 단절을 통해 우리는 ‘말’이라는 무시무시한 힘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 때문에 ‘쉼’을 쉽게 얻을 수 없다.
사람은 말하는 것을 통해서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이 ‘말’을 체계적으로 구성하면 바로 ‘의견’이 된다. 의견을 제시하는 대신 침묵해버리는 것, 이로 인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정치적 행위는 결정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 57쪽 -
이처럼 말은 우리가 사회나 국가에 무언가 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런 권리를 포기하고 ‘쉼’을 갖는다는 것은 타인으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분리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즐기고 싶으면서도 공동체에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스스로 공동체라는 삶 속에 가둘 뿐이다.
이런 사회적 구조 때문에 우리는 자꾸만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대부분은 먹고살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여유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그러면 우리는 ‘쉼’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품는다. 우리는 이처럼 ‘쉼’을 가지기 위해서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해야 한다.
현실과 가상세계 속 숨바꼭질.
우리가 공동체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사회적 고립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동질성을 강조하는 느낌이 크다. 그런 모습이 10대의 문화에서 크게 두드러진다. 입는 옷, 신발은 기본이고 먹는 것, 즐기며 노는 것까지 같음을 강요한다. 새로운 유행에 조금만 늦어져도 ‘야 이 문찐아. 이것도 모르냐?’라고 듣기 십상이다. 문찐은 사전 속에서 ‘현대 문화에 덜떨어진 사람’을 칭하는 단어이다. 이처럼 대부분과 다른 길을 걸어가면 사회에서 고립될 수도 있다는 걱정과 불안감에 우리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그 어떤 의견도 내기가 두렵다.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곧 이견을 제시한다는 것이고, 이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 ‘불편하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표현하고 힘을 모으는 과정이었는데, 그동안의 권력은 그것을 불온시해왔다. - 49쪽 -
모두가 같은 의견과 생각을 가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반드시 내가 뱉은 말은 누군가에게는 이견이 되어버린다. 만약 내가 정말 어떤 의견에 맞서고 싶었다면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의도 없이 내뱉었던 말이 누군가에게 도전적이고 공격적으로 들렸을 수도 있다. 내 의견이 하필 공공의 의견을 거스르는 발언이었다면 더 큰 위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숨겨버린다. 마치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꽉 닫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삼켜버리는 게 습관이 되었다. 뱉지 못했던 말들이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이니까 마음에 병이 생겨버렸다.
그 대표적인 공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일상의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반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낸다. - 67쪽 -
사람들은 SNS를 통해서 마음에 묻어 두었던 말들을 쓴다. 또는 말을 마음에 묻어서 생긴 마음의 아픔이나 상처를 털어놓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자신을 모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따라서 그 어떤 사람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SNS에 더 의지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SNS에서 만난 사람 속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금방 관계를 잇게 된다. 반면, 현실 속에서 관계를 맺으려면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 오히려 현실 속에서는 점점 관계를 끊어내며 멀어진다. SNS상에서는 비슷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며 자꾸만 접속하게 되고 그 인구는 계속 증가한다.
이런 현상은 사회적 문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일명 ‘스마트폰 좀비’가 태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개만 계속 숙이고 주변을 보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바로 눈 앞에 있는 사람들을 두고 스마트폰 속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한다.
말의 무서움으로 인해 사람들은 점차 현실 속에서 숨어버린다. 그리고는 가상현실에서 빼꼼하고 가면을 쓴 채 자신의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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