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박사와 하이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작품 속에서 만난 박사와 그의 또 다른 인물은 무대 위의 극적인 장면처럼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아 있다. 도시의 어두운 골목에서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서서히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고상한 품격으로 가득 찬 한 학자를 보고 존경의 눈빛을 보냈지만, 숨 막히는 비밀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처음에는 대체 뭐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인간 안에서 번갈아 등장하는 선과 악의 충돌이 머리를 무겁게 했다. 책을 덮고도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스티븐슨은 왜 이런 모험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박사는 따뜻하고 학구적인 태도를 지닌 인물이다. 그 사람은 어려운 이들을 돕고 싶어 했고, 학문 연구에 자신의 생을 바치는 듯 보였다. 그가 성실하고 진지하게 보이는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숨겨진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예의 바른 그가 점점 위험한 방향으로 빠져들었을 때,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그가 건네는 말에 때때로 섬뜩한 긴장감이 서렸다. 그렇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이나 몸짓은 여전히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이런 간극이 묘하게 느껴졌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궁금증이 커질수록 뒷장으로 손이 빨리 갔다.
이야기의 흐름은 사람이 자신의 본성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면을 건드릴 때 무엇이 벌어질지 보여준다. 스티븐슨은 무서운 존재를 괴물처럼 묘사하기보다, 평범해 보이는 학자에게 소름 끼치는 어둠이 깃들어 있음을 강조한다. 박사라는 타이틀이 주는 안정감이나 선량함이 깨어지는 순간, 독자는 충격을 받는다. 어떤 이는 거대한 재앙이나 눈에 보이는 외적 괴물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는 웃으며 악수를 건네는 사람 옆에 엄청난 비밀이 잠들어 있었다. 사람들의 믿음과 신뢰가 배신당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졌다. 도덕적으로 훌륭해 보이는 인물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괴롭다.
교양과 예의를 갖춘 박사가 사실상 다른 자아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는 연구자의 입장으로서 자비를 실천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다가 자기 안에 울리는 충동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욕망에 빠졌고, 결국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누구나 마음 안에 여러 갈래의 면이 존재한다고 느끼곤 한다. 대다수는 적당히 균형을 맞추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균형이 파괴되고 말았다. 실험 정신에 매달린 학자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괴이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 전개가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가를 극적으로 드러냈다.
책 속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박사의 변신이었다. 그가 또 다른 존재로 탈바꿈할 때 생기는 사건들은 무서웠다. 별다른 고민 없이 폭력적 행위를 저지르는 그 인물이 자신과 사실상 동일한 존재라는 사실이 섬뜩했다. 누구에게나 존재할 수 있는 면을 너무 노골적으로 끌어냈다고 느껴졌다. 오싹한 기분이 문득 스며들면서, 인간이 가진 선과 악의 경계가 얼마나 희미한지를 깨닫게 된다.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만행은 물리적으로만 잔인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파괴를 은유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글자로 확인하는 동안 마음이 흔들렸다.
어쩌면 현실에서는 누군가가 속으로 다양한 유혹과 싸우며, 겉으론 멀쩡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작품에 등장하는 박사는 용서받기 어려운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연구를 통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려는 열의가 있었다. 그 아이러니가 아주 슬프게 느껴졌다. 그의 연구 동기가 처음부터 흉악한 목적만을 지녔던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선한 의도로 시작된 무언가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좋은 뜻을 가진다고 해서 결과가 꼭 아름답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직면해야 할 딜레마가 아닌가 싶다.
읽다 보면, 박사의 인간적인 면모에도 공감하게 된다. 결코 전적으로 악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학계에서의 명예를 추구하고, 주변 사람들을 돕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광기로 가득 찬 포악한 인물이 돼버린 것이 아니라, 조금씩 경계를 넘으며 어둠에 발을 들이는 과정이 차근차근 묘사되어 있다. 그 모습이 더 진한 충격을 준다. 무언가 끊임없이 고민하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호기심이 지나쳤다고 생각되는 순간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다. 그 한계를 직접 체험하고자 했던 것이 결국 자멸의 길이었다.
줄거리가 전개될수록 주변 사람들은 박사의 변화를 이상하게 느낀다. 평소와는 다른 기묘한 기색을 감지하고, 이상한 소문이 하나둘씩 퍼진다. 어떤 이는 그를 방문했다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뛰어나가기도 한다. 사건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사람들은 박사를 의심하고 불안을 키운다. 그가 집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밖으로 나오기를 꺼리는 장면은 더욱 긴박하게 느껴졌다. 결국 참혹한 사건이 벌어지고, 모든 것이 드러날 때 독자는 공포와 안도의 뒤섞인 감정을 맛보게 된다. 어둠이 완전히 노출되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잠시나마 속 시원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남은 파괴의 흔적은 너무 컸다.
이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욕망과 도덕이 충돌할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자주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에는 단지 이상한 약물을 실험하는 줄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점차 그 이면에 깊은 고민이 배어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어두운 충동을 해결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충동을 더욱 키워버렸기 때문이다. 어두운 감정은 눌러두면 언젠가는 터진다는 경고가 느껴졌다. 극도로 억제하려다가 결국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만든다. 문득 세상의 여러 사건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갑자기 폭력적 범죄자가 되어버리는 이야기나, 존경받던 인물이 누군가를 해치는 비극을 듣게 될 때, 그 뒤에 숨은 심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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