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국어] 상실의 시대에서 본 나와 관계의 문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우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을 ‘상실의 시대’라고 이름 바꾼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번역이 우리말 고유의 문법이나 문체를 망가뜨리지만 않는다면(지금의 ‘되어진다’ 등의 불필요한 수동태나 ‘전화 왔었어’같은 우리말에는 없는 과거완료형 등) 최대한 원문 그대로 살려야 한다. 이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이윤기 선생은 ‘번역은 가장 정치(精緻)한 예술’이라고 했을 것이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말은 아무 문제가 없다. 번역자가 ‘상실의 시대’라 이름 바꾼 것은, 우리 읽는 이들의 자유로운 관점과 상상력을 제한하는 일종의 강제라고 생각된다. 나의 게으름과 무능 탓에 원문을 읽지 못하여 소설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잘못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을 읽고자 했으나 어쨌든 결국에는 에 갇혀버린 셈이다. 그러나 바뀐 이름의 ‘상실’과 ‘시대’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으려 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위치를 알 수 없음’이다. 나오코와 와타나베(나)
우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을 ‘상실의 시대’라고 이름 바꾼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번역이 우리말 고유의 문법이나 문체를 망가뜨리지만 않는다면(지금의 ‘되어진다’ 등의 불필요한 수동태나 ‘전화 왔었어’같은 우리말에는 없는 과거완료형 등) 최대한 원문 그대로 살려야 한다. 이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이윤기 선생은 ‘번역은 가장 정치(精緻)한 예술’이라고 했을 것이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말은 아무 문제가 없다. 번역자가 ‘상실의 시대’라 이름 바꾼 것은, 우리 읽는 이들의 자유로운 관점과 상상력을 제한하는 일종의 강제라고 생각된다. 나의 게으름과 무능 탓에 원문을 읽지 못하여 소설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잘못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을 읽고자 했으나 어쨌든 결국에는 에 갇혀버린 셈이다. 그러나 바뀐 이름의 ‘상실’과 ‘시대’라는 단어에 갇히지 않으려 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위치를 알 수 없음’이다. 나오코와 와타나베(나)
하고 싶은 말
도움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