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현대판 마녀 사냥의 사례
3. 마녀 사냥에 대한 인식
4. 사태 원인 및 분석
5. 변화를 위한 움직임
(1) 그린 박스 제도
(2)인터넷 실명제
∞∞∞∞∞
6. 마치며
마녀 사냥은 중세 종교 암흑세기에 행해졌던 카톨릭의 죄악 행위이다. 라는 구절에 따라 마녀 사냥은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을 마녀로 모함해 소중한 생명을 빼앗아 갔다. 십자군 원정이 실패한 이후 종교적 위기감이 높아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단적 신앙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으로서의 마녀 사냥은 14세기부터 시작하여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다가 16세기 말~ 17세기가 전성기였다. 초기의 희생자 수는 극히 미미하였다. 하지만 마녀 사냥을 전담하던 종교재판소의 권한이 세속법정으로 넘어 가면서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스도교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을 당시에는 신에 대한 반역이나 모독은 그 어떠한 범죄보다 중죄였다. 처음에는 마법의 유형에 따라 달리 취급하였지만 나중에는 마녀라는 것 자체만으로 화형·참수·교수 등의 엄벌을 받았다. 독일·영국·프랑스·스위스·핀란드·에스파냐 등지에서 일어난 마녀재판을 1만 건 이상 분석한 로버트 무쳄블래드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마녀로 기소된 사람 가운데 거의 반이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쳐 광란을 연출하였던 마녀재판도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의 진전과 더불어 이성적 세계관과 과학 정신의 대두는 불가피한 시대정신이 되었고 이것은 신학에 기반한 과학의 해방을 의미하였다. 이로써 불합리의 극치인 마녀재판도 존립의 근거를 잃게 되었다. 18세기를 지나면서 마녀의 고문과 그에 따른 화형도 사라졌다. 이처럼 악마와 마법 그리고 마녀가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신념은 지배계급과 당시의 지식인인 신부와 법관들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었다.
박광주 논설위원 사설
딜레마에 빠진 인터넷. 홍윤선 지음. 굿인포메이션
중앙일보
한국일보
브레이크뉴스
오마이뉴스
서울-연합뉴스
국민일보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