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으로 말한다면, 죽음은 모든 것의 종말을 뜻하기 때문이며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으로 해석한다면, 죽음은 결코 모든 것의 종말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있는 그 내부에 있어서의, 즉 영원한 생명의 내부에 있어서의 하나의 작은 사건에 불과할 뿐이다. 기독교적으로 해석한다면, 다만 인간적인 의미로보다도 무한히 많은 희망이 죽음 안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적으로 해석한다면, 죽음도 역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아니다. 더욱이 지상의 일시적인 고뇌, 즉 고통, 병, 비참, 곤란, 불운, 고역, 한탄, 우수, 회환 등은 그 어느 것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기독교들에게 익살과 같은 것이며 다만, 기독교도만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알고 있다.
서론에서 그가 밝혔던 '죽음에 이르는 병'의 정체는 바로 '절망'이다.
절망은 정신에 있어서의 병, 자기에 있어서의 병으로 거기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절망하고 있으면서 자기를 가지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기를 욕망하지 않는 경우, 절망하여 자기 자신이기를 욕망하는 경우이다.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 실존한다는 것은 우선 단독자임을 뜻했다.
"단독자의 범주에는 나의 모든 윤리적 의의가 절대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 만일 이 범주가 옳다면 이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는 일을 자신의 과제로 여기는 내가 옳고, 내가 옳게 이해한 것이라면 내가 있는 곳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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