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논쟁이 되었던 또 다른 테마는 신세계에서의 복음의 전파에 관한 것이었다. Jacques Lafaye 는 그의 Politica indiana에서 Solorzano Pereira 의 견해를 인용했는데 인디오들의 개종은 하나님에 의해서 스페인 군주들와 그들의 선교사들 그리고 신하들에게 맡겨진 것이며. 즉 라는 것이다. 반면에 어거스틴 파의 신부인 Antonio de la Calancha 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후 얼마 후에 ,즉 그리스도가 죽은지 72년후에 복음이 아마도 성 도마에 의해서 서인도에서 전파됐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것은 인디오들의 신앙과 기독교 사이의 유사점들을 설명해주었다. 위와같은 쟁점들을 여기서 따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단지 17세기에 근본적인 변화과 있었다는 것만 얘기하고자 한다. 의 정책은 ‘다리’ 라는 정책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인디오 세계와 기독교적 세계간의 자연적인 것보다는 초자연적인 의사소통의 길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다수의 인디오들이 알고 있는 제설혼합주의와는 달리 신 제설혼합주의는 기독교를 인디오화 할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에서 기독교적 징후들을 찾고자 한것이었다.
17세기의 제설혼합주의는 예수회 신학자들과 역사가들, 그리고 그들과 가까운 Carlos de Siguenza y Gongora 와 같은 지식인들에 의한 작품이었다. Nueva Espana 에서의 예수회의 정책은 세계전역과 온 중국에서의 그들의 일반적인 전략의 하나였다. 이러한 전략의 영적인 그리고 지적인 핵은 보편적이며 초자연적인 진리에 대한 점진적 계몽이라는 세계관이었다. 이러한 진리의 총체는 기독교적인 것이었고, 예수의 열정이었으나 세계의 다른 지역 그리고 다른 시대에 동일한 불가사의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표적과 상황에 맞는 불가사의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17세기 예수회의 혼합제설주의는 사도 바울의 정책과 비교될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예수의 교리를 예루살렘 교회-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에 의해서 지도된- 와 유대주의를 이어주는 탯줄을 끊음으로써 보편화하였다. 사도 바울의 통치는 헬레니즘 적인 것이었다. 예수회의 제설혼합주의 역시 보편화의 의도를 갖고 있었으나 그 범위에 있어서 지중해보다 더 광대한 것이었다. 인도와 중국, 멕시코의 고대 신앙들이 이러한 보편화의 도구들이었다. 내게 긴 설명을 요하는 중요한 한 예로서 의식적 공자사상에 관한 Controversia de los ritos를 들겠다. 예수와 가까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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