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학] 석굴암의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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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화학] 석굴암의 분석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석굴암
Ⅱ. 석굴암의 역사
Ⅲ. 석굴암의 특징
Ⅳ. 석굴암의 구조
Ⅴ. 석굴암의 내부
본문내용
석굴암은 원래 석불사(石佛寺)라는 이름의 독립된 절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불국사에 소속되었고 조선 후기부터는 석불암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 1910년경부터 일본인들에 의해 석불암 대신에 석굴암으로 불려져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완공된 석굴암은 여러 번 수리와 보수 공사를 받아왔다. 1703년(숙종 29년)과 1758년(영조 34년)에 석굴암을 수리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조선 말기에 크게 보수했으나 한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지다가, 일제 강점기 초에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인들의 기록에 의하면 석굴암 천장의 3분의 1이 무너져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으로부터 흙들이 들어오고 있었으며, 구멍을 그대로 놔둘 경우 본존불까지 파손될 위험이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고 한다. 1913년 시작된 석굴암 보수 공사는 석굴암 수난의 시작을 알린다.
당시 일본인들은 석재를 덜어내고 교체하면서 석굴을 완전히 해체하는 대공사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석굴암의 원래 모습대로 완전히 다시 조립하지 못하고 일부 석재를 남겼다. 그리고 시멘트를 석조물 조립에 사용하여 석굴암의 보존 상태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이 보수 공사는 오늘날까지도 석굴암의 보존 상태에 큰 어려움을 남기고 있다.
1917년에 다시 물이 새고 습기가 차지 시작하자, 일제는 1920년부터 1923년까지 물이 새는 천장의 방수를 위해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후로 차가운 돌에 더운 공기가 닿으면서 생기는 이슬로 석굴암 내부에 돌이끼가 끼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보수 공사에도 불구하고 습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자, 1927년에 푸른 이끼를 없애기 위해 증기 세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