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공학] 목재 공학적 측면에서 본 황룡사 9층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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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산공학] 목재 공학적 측면에서 본 황룡사 9층탑(3)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먼저 황룡사 9층 탑에 대해 알아보자. 신라 삼보(三寶)의 하나로, 삼국유사에 의하면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자장(慈藏)의 요청으로 건조되었다 한다. 그러나 645년(선덕여왕 14) 처음 건축을 시작하여 그해 4월 8일에 찰주를 세우고 이듬해 완공했다는 설도 있이데, 이는 황룡사 구층탑지 심초석(心礎石) 안에서 도굴된 신라황룡사찰주본기(新羅皇龍寺刹柱本記)에서 비롯한 것이다. 아홉 개의 층은 모두 신라 변방의 나라들을 가리켰고 탑을 세움으로써 이웃의 침해를 누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9개의 나라는일본, 중국, 탐라, 말갈, 응유(백제), 단국(거란), 여적(여진), 예맥(고구려)이었다고 한다. 이 탑은 건립된 후 50년이 지난 698년(효소왕 7) 벼락을 맞아 불탄 이래 여러 차례 중수되어 그 웅장한 모습을 유지해왔으나 1238년(고려 고종 25) 몽골의 병화(兵火)로 가람 전체가 불타버려 그 후로는 중수되지 못하였다. 황룡사의 9층탑이 실제로 목탑이었다 하더라도 건축 기술상 아파트 30층 높이의 타워를 나무로 짓기는 곤란하다는 판단으로, 철골 구조물로 탑을 세우고 탑내, 외벽면을 목재로 마감하는 방법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러나 황룡사 9층탑이 과연 목탑 이었다면 그 규모나 웅장함에 있어서 현존하는 최대 목탑에 비해 훨씬 크며 그 건축 연대 또한 한참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 웅장하고 거대한 목탑을 버틸 수 있는 기술은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은 결구와 공포를 통해 알 수 있다. 공포는 궁궐․사찰․기념적 건축 등의 전통목조 건축에 쓰이는 부재(部材). 주두(柱頭)․소루(小累)․첨차․제공(諸工)․살미[山彌] 등을 조합하여 처마끝의 무게를 기둥에 전달하는 부재를 말한다. 공포는 구조적으로 안전한 완충적 기능을 하기도 하고, 그 구성과 공작이 섬세하고 화려하여 장식적(裝飾的) 기능도 가진다. 공포 형식은 크게 2종류로 나누어지며 세분하면 3종류로도 볼 수 있다. 크게는 주심포식(柱心包式) 공포와 다포식(多包式) 공포로, 더 세분하였을 때는 익공식(翼工式) 공포도 포함할 수 있다. 다포식 공포는 주심포식 공포와는 달리 기둥 위는 물론이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주간(柱間)에도 공포를 배치한 형식으로, 고려시대의 것으로 북한에 있는 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