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영하 소설의 현재적 의미
1. 원한의 상상력
1. 지금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한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둔 90년대의 끝자락에서 잿빛 우울한 예감들이 난무한다. 그 이야기들의 주요한 몫을 차지하는 것이 일군의 젊은 소설가들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편승한 일부의 평자들 또한 여기에서 제외될 수 없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암울하고 절망적이다. 실로 많은 작가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생산해 내고 있으며 여러 평자들이 나서서 그런 현상에 (급진적) 허무주의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독자적인 영역을 구획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세기말적 분위기의 확산과 더불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구제 금융 시대의 도래 속에서 대다수의 많은 독자들이 근거 없는 허무주의에 동조하거나 동화되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들의 글 속에는 역사·시대·민족이 거세되어 있으며 건조한 섹스, 죽음에의 동경이 그것들을 대신하고 있다. 달리 말해 그들은 건조한 섹스, 죽음에의 동경을 매개로 삶의 무의미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에 대한 호(好), 불호(不好)의 판단을 내리기 앞서 그러한 이야기의 근저를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과연 그런 현상에 (급진적) 허무주의라는 꼬리표가 정당한 자리 매김인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김영하는 ‘최근의 이러한 현상을 신세대적 감수성으로 전횡하고 있다’는 말로 수렴될 수 있을 법한 소설가이다. 그는 세상에 몇 편 안 되는 소설을 발표하는 동안 ‘풍문으로만 들려 오던 소위 신세대적 감수성의 실체를 확인시켜 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신세대적 감수성이 기존의 담론 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담론 질서를 형성할 정도로 성장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과 함께 ‘문학사적 사건이자 한국 문학의 앞날을 미리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격찬을 받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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