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Ⅱ. 본론
1.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문자생활
2. 15세기에서 한일합방 전까지의 문자생활
3. 일제 강점기 시대의 문자생활
4. 해방 이후 로마자 표기의 정착
Ⅲ. 결론
과거는 미래를 내다보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지 않았다면 어떤 문자생활을 영위하였을 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훈민정음 창제 이전 우리민족의 문자생활을 정리하여 본다. 우리말을 표기할 문자가 창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입말과 글말이 다른 ‘言文二致’의 이중적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 한자의 유입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문자생활은 당시 동아시아의 정치, 문화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중국 한자의 영향을 받았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BC 194년인 위만조선때와 BC 108년 한사군이 설치된 시기를 한자가 유입된 때라고 보고 있다.
이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한자사용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가 기록상으로 보여 지는 최초의 한자 사용 시기이기도 하다. 삼국의 한자사용에 있어 특징은 다음과 같다.
시 기
특 징
고구려
역사책 ,
백 제
서기(書記) 편찬, 일본에 한자 전함
신 라
지리적 조건으로 도입 늦음, 지명을 중국식으로 개정
2) 한자의 차용
한자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우리 조상들은 이것을 가지고 自國語를 표기하려는 욕구를 느꼈고, 이러한 배경 하에서 한자를 우리식으로 차용하는 표기법이 시작된다. 이기문, 『國語史槪說』, 태학사, 2007, p. 58
이를 일컬어 借字表記라고 한다. 우리말 소리와 아무 관련 없는 외국 문자인 한자에 기대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① 고유명사 표기
한자로 국어의 고유명사 표기를 표기한 것을 차자표기의 첫 번째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한자에 익숙해진 선조들이 고유어의 음성 형태를 성실히 실현시켜 자국어를 표기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한자의 음(音 )과 훈(訓)을 이용해 고유명사의 음성적 특성을 살렸다.
고유명사의 표기는 표음적(表勳的) 표기와 표의적(表意性) 표기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한자의 표음적(表音的) 기능을 취한 음독자(音讀字)는 ‘古’를 ‘구’ 음의 표기에 사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자의 표훈적(表勳的) 기능을 살려 표의성(表意性)을 국어 단위로 고정시킨 석독자(釋讀者)로는 ‘水’를 ‘믈’이란 단어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고유명사의 표기는 국어가 문자에 의해 정착되기 시작되었다는 점과 음성 형태로 음절 단위 분석 시작했다는 점, 또 중국어와 국어의 음운 체계상 차이 파악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반면 이러한 표기 방식의 도입 이후 국어에 대한 관념이 비하와 음훈차(音訓借)표기의 복잡성과 불합리성에 대한 인식으로 중국어의 차용 현상이 활발했다는 점과 이로 인해 고
김미형, 『우리말의 어제와 오늘』, J&C, 2005.
김행식, 『일제의 한국침략과 저항사』, 우삼, 1998.
백승종, 『그 나라의 역사와 말』, 궁리 출판, 2002.
이기문, 『國語史槪說』, 태학사, 2007.
전정례, 김형주, 『훈민정음과 문자론』, 역락, 2002.
최기영, 『식민지시기 민족지성과 문화운동』, 한울, 2003.
H.B. 드레이크, 『일제 시대 조선 생활상』, 집문당, 2000.
네이버 백과사전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