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데미안`을 읽고
얼마 전,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라는 애니매이션을 보았다. 거기에 나오는 ‘시시가미’라는 사슴의 형상을 한 자연신이 있다. 재앙신의 저주를 풀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시시가미’를 만나러 가는 남자 주인공 아시타카. 그래서 나는 당연히 ‘시시가미’라는 존재는 저주를 내린 재앙신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선한 존재이므로, ‘시시가미’를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해결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시시가미’가 등장하면서 풀밭을 걸어 나오는데 발걸음, 걸음마다 풀들이 죽어나갔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시 살아났다. 또한 ‘시시가미’는 무조건 재앙을 풀어준다거나, 살려주지 않는다. 그것이 아직 살아가야 하는 운명의 것이어야만 생명을 다시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무리 딱한 사정의 경우라도, 많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나는 착한 존재라 해서 생명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시시가미’의 모습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시시가미’는 자연신이다. 우리의 틀에 박혀 있는 선신(善神)⋅악신(惡神)의 기준으로 판별 할 수 있는 신이 아니다. ‘시시가미’는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앞의 상황들 모두가 그저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었다. 또한 그것과 연관해 생각해 본다면...죽어야지만, 다시 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시시가미’에 대해 이런 생각들을 하였고, 그래서 이번에 ‘데미안’을 읽으면서 ‘시시가미’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싱클레어는 선과 악, 빛과 어둠으로 나누어진 세계를 감지하고 있는 아이이긴 하였다. 하지만 크로머라는 아이에게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을 한 때부터 그 사이에서의 방황이 확실해진다. 싱클레어는 크로머가 ‘과수원 주인이 누가 사과를 훔쳐 갔는지를 말해 주는 사람에게는 이 마르크를 준다고 말한 것을 알고 있다.’라고 한 이야기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 들인다. 그리고 의심 없이 받아 들인 후에 크로머에게 휘둘리게 되며 괴로워한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