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1운동과 민족의식의 성장
2. 일본 유학과 공산주의 사상의 습득
3. 사회주의 청년운동과 대중활동
4.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조직
Ⅱ. 전향, 그리고 새로운 정치노선의 모색
1. 단독정부 참여
2. 농림부장관
3. 제2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당선, 부산정치파동 그리고 발췌개헌안
4. 제2대 대통령 선거
5. 제3대 대통령 선거
6. 진보당 창당
【진보당 사건】
1. 정우갑 사건
2. 박정호 사건
3. 조봉암 5년, 평화통일론 무죄
【끝맺으며】
【참고자료】
Ⅰ. 식민지 시기 국내에서의 민족해방운동
1. 3․1운동과 민족의식의 성장
조봉암은 1899년 9월 25일 경기도 강화군에서 태어났다. 그가 20살이 되던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조선 독립이 선언되고 민중의 조선 독립에의 의지가 전민족 봉기의 형태로 진행되어가자, 조봉암 역시 3․1운동에 참가하게 되고, 그로인해 1년간의 투옥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혈기왕성한 청년 조봉암에게는 일생의 행로를 뒤바꾸게 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3․1운동을 겪은 대부분의 식민지 청년들이 그러했듯이 그것은 조봉암에게도 민족의식을 형성, 성장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민족의식에 가득차게 되었던 조봉암은 무언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3․1운동이 우리 민족의 단결된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민족해방운동에 나설 수 있게 한 힘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폭력적, 비계획적, 그리고 33인의 지도자와 같은 투항적 운동이 가지는 한계 또한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움직임으로 조선의 독립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다. 결국 조봉암은 3․1운동을 계기로 민족해방운동에 투신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3․1운동의 한계를 보면서 새로운 이론과 방법으로써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모색을 위해 일본으로 유학의 길을 떠날 것을 결심하였다.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논쟁으로 본 한국사회 100년, 역사비평사, 2003
이영석, 조봉암, 누가 그를 죽였는가? , 세상의 창, 2000
이재상, 형사소송법, 박영사, 2002
정태영 오유석 권대복, 죽산 조봉암 전집4, 세명서관, 1999
정태영 오유석 권대복, 죽산 조봉암 전집5, 세명서관, 1999
정태영, 진보당과 조봉암, 한길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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