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우그룹
2) 기업 연혁
3) 대우그룹의 설립과 성장
4) 대우그룹의 해체
5) 대우그룹의 성과
2. 해체 이후의 대우
1) 부도 이후의 계열사 현황
2) 현재의 대우
1967년 3월 22일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던 김우중 회장은 서울에 섬유제품을 수출하는 대우
실업을 설립하였다. 창립 당시의 자본금은 500만원이었고, 종업원은 다섯 명에 불과했다. 대우의 첫 사업은 트리코트 원단을 동남아 무역의 중계지인 싱가폴에 수출하는 것이었다. 동남아 시장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많아지면서 안정된 생산체제가 필요해진 대우는 하청업체에 의존하던 종래방식에서 벗어나 자체생산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 69년 12개에 불과하던 자체 생산 라인이 70년 18개, 71년에 27개, 72년에는 33개로 증설되었다.
1970년 미국시장에 직접 수출을 모색하던 대우는 Sears Roebuck에 이어, J.C. Penny, Montgomery Ward 등의 직거래 고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이즈음 김우중 회장은 미국 정부가 조만간 수입쿼터제를 실시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쿼터를 배정할 때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도록 수익성보다는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섬유제품을 미국 시장에 수출하는 데만 주력했고, 그 결과 1972년 그때까지의 수출실적을 바탕으로 한 미국정부의 쿼터배정에서 한국에 주어진 쿼터의 30% 정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미국의 섬유쿼터제 실시는 초반기 대우의 성장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안정적인 시장의 확보 뿐 아니라,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른 수출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금융 및 세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플레이션율과 사채시장에서의 금리가 각각 42.1%, 40.6%에 다다랐던 1974년 당시, 수출금융(export financing) 금리는 겨우 9%에 불과했다.
번창하던 섬유수출, 저리의 은행대출에서 나온 풍부한 재무자원으로 대우는 적극적인 성장전략을 추구했다. 14개 기업을 인수했고, 다른 2개 기업의 대주주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1975년 대우는 섬유회사에서 벗어나 건설, 섬유, 가죽제품, 기타 경공업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기업집단으로 변모했다.
1970년대 후반 대우는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발맞추어, 기계, 조선분야로 적극 진출함으로써 근본적인 변신을 맞이하게 된다. 1976년 한국 최대규모의 디젤엔진, 차량 및 산업 기계류 생산업체인 한국기계를 인수하고, 78년에는 옥포 조선을 인수함으로써 중공업에 진출하게 되었으며, 78년 새한자동차의 산업은행 지분을 인수함으로써 자동차산업에 진출했다.
이러한 성장전략은 1980년대에도 이어져서, 1983년에는 대한전선의 가전부문을 인수하여 오디오 제품을 제조하고 있던 기존의 소기업 대우전자와 합병하고 대우 전자부품을 인수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전자산업에 진출하게 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대우통신을 인수함으로써 통신 산업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설립 20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1987년에 이르면 무역, 건설, 기계, 전자, 통신, 자동차, 조선, 화학, 금융 등 12개 산업의 29개의 소속회사를 거느린 현대에 이은 국내 자산규모 2위(매출액 규모 4위), ‘Fortune지가 선정한 미국을 제외한 500대 대기업‘에서 35위에 오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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