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격의 탁월성
3. 지적인 탁월성
4. 관조적 삶의 문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설은 인간 행동이 어떤 목적을 지향한다고 보는 데서 시작한다. 목적들은 다양하며 그 중 어떤 목적은 다른 목적에 종속되고, 그 다른 목적은 또 다른 목적에 종속될 수 있다. 따라서 마지막에는 궁극 목적1)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 행동의 궁극 목적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선2)이 그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 무엇이 최고선일까? 즉 우리의 궁극 목적이 되는 최고선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행복(eudiaimonia)3)이 그것이라고 답한다. 이런 점에서는 그의 윤리설은 행복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잘 살고 편한 것"과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는 데 모든 사람이 동의한다4)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행복하다는 것이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 말을 도덕적 판단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행복하다는 것은 잘 사는 것이며 가장 바라던 것을 가지는 것이지 칭찬을 받는 것은 아니다5).
행복은 복합적인 것이다. 이상적인 삶은 그것이 포함한 한 가지 요소에 의해서만 이상적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준들 또는 희망 사항을 가진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매우 못생기고 천한 출신이며 외롭거나 아이가 없다면 행복할 수 없다.(1095b2) 또한 돈도 필요하다.(1099a31) 즐거움과 우정, 그리고 모든 인간적 탁월성은 행복에 필수적이다. 최상의 삶의 후보로 상식적으로 거론되는 세가지 유형의 삶은 감각적 즐거움의 삶과 세속적인 일에 연루된 삶, 그리고 이론적 성찰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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