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
청일전쟁 후 국제정세 속에서의 조선
일본의 정황 변화
을미사변에 대해....(일본측 입장)
결론
1895년 4월 23일 동경주재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삼국의 공사는 각기 일본 외무성에 출두하여 삼국이 공동합의를 거친 각서를 제시하였다. 그 골자는 ‘일본의 요동반도 영유는 청국의 수도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조선의 자주독립을 유명무실하게 하여 장래 극동의 영구적 평화에 장애를 줄 것이므로 요동반도의 영유를 방기할 것을 권고한다.’는 것이었다. 청일전쟁의 강화로 하관조약(1895. 4. 17)이 체결 된지 불과 일주일 만에 행해진 삼국 간섭이 바로 이것이다. 결과적으로 삼국 간섭은 청일전쟁 이후 만주와 한국을 둘러싼 러, 일 대립의 출발이자 러일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제가 만주문제와 함께 러, 일 사이에 중요한 쟁점으로 등장한 계기였다. 이것은 조선의 대외정책에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이 삼국 간섭이후에 조선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인아거일의 현상이다. 인아거일이란 ‘한국측이 러시아를 끌어들여(인아) 일본의 침략에 대항한 것(거일)’이란 의미로서 바로 이것이 중요한 동기가 되어 일본이 왕비를 시해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즉 삼국 간섭에 의해 일본이 요동반도를 반환하게 되자 이 상황을 포착한 왕비가 인아거일로서 일본 세력에 대항하려 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해석에는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삼국 간섭이 한국의 조야 인사들에게 심리적 영향을 미치고, 이후 왕비가 각종의 수단을 통해 일본의 압제 하에 실추된 왕권의 회복을 기도하였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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