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정의 신자유주의 개념 신자유주의 대두 배경 신자유주의
★ 신자유주의란?
신자유주의의 시작은 대체로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수 있을 것 같다. 그 시작은 미국과 영국으로부터였는데, 흔히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미국의 대통령 레이건의 이름을 따서)로 표현되기도 한다.1970년대까지 세계경제는 GATT와 브레튼우즈로 대표되는 두 가지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어 왔다. 간단히 말하면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는 세계무역의 규범으로서 광범위한 자유무역의 기조를 유지하되, 농업과 섬유 등 특정한 산업에 대해서는 각 국가의 자율성을 인정한 제한된 자유무역체제였고, 브레튼우즈체제는 통화에 관한 협정으로서 금 1온스에 35달러로서 가치를 고정시키고 다시금 1달러에 대해 각국의 통화를 고정시키는 금환본위제로서 쉽게말하면 각국의 통화가치를 고정시키는 제도였다. 즉 자유무역의 기조는 최대한 유지하돼 각국에 일정부분 자율적인 조치를 인정하며, 통화의 국제적인 이동은 제한하는 체제였다. 1930년대 각국은 경쟁적인 평가절하와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망해가는 체제였다고 말할 수 있다. 세계무역이 1/3수준으로 감소할 정도로 가공할 정도의 보호무역을 견지함에 따라, 기업은 연쇄도산하고 은행또한 같이 망하는 위험한 시기였다. 흔히 대공황이라고 말하는 시기입니다.이때 급부상한것이 유명한 케인즈안, 즉 수정자본주의이다. 유효수요, 즉 수요부문을 창출함으로써 공급부문(생산자)을 살리는 방식이다. 국가에서 이런저런 대규모사업을 일으켜 국민들을 고용, 임금을 줌으로써 죽어가는 기업들의 상품을 사게끔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은 세계2차대전 후 GATT와 브레튼우즈체제가 성립된 시기였고, 대공황의 혼란과 각국의 처절한 경제전쟁은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불러오게 된다. 이 교훈이 바로 1950년대-1970년대초까지 GATT와 브레튼우즈를 유지시켜준 근본 배경이다. 다시 돌아와서 GATT와 브레튼우즈도 1970년대에는 한계점에 도달한다. 미국의 재정적자 누적은 금-달러 고정환율체제를 포기하도록 만들게 된다. 금1온스-35달러-각국의 통화고정이라는 일련의 환율체계는 미국이 1973년 금태환을 포기함으로써 종말을 맞는다. 환율의 변동이 자율화되면서 통화의 국제적 이동도 자유롭게 되며 이때부터 요즘 말하는 헤지펀드들이 다시 세계를 누비기 시작한다. 그 즈음 세계는 2번의 석유파동을 맞게되고 경제상황을 다시금 위험수준에 이르게 된다.이때 대처와 레이건이 신자유주의로 명명되는 일련의 정책들을 시행한다. 저금리정책, 금융혁신(빅뱅), 기업구조조정 등 현재 한국이나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정책들이 이즈음 시작되었다.
1.신자유주의의 개념
과도한 국가개입과 복지정책으로 인해 1970년대 서구사회에 경제침체와 사회활력저하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국가개입 축소와 시장경제 강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를 반영한 경제정책을 총칭해 신자유주의라고 하고 있다.
1970년대 이전, 즉 1900년대 초에도 ‘신자유주의’라고 불렸던 주장이 있었다.
① 1912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W.윌슨은 ‘독점을 조장하는 부정한 경쟁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억제함으로써 미국의 자유와 진보의 원천인 경제적 자유를 지킬 수 있다’며 공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활동범위 확대를 주장했는데, 정부의 개입을 적극 반대했던 고전적 자유주의와 비교해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다.
② 모든 계획경제에 반대하고, 생산 소비 직업선택 등에 대해서는 자유경쟁을 완전히 보장하지만, 시장형태 등을 포함한 사회적 질서의 형성과 유지에 대해서는 국가가 경제 및 사회 정책을 통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1920년대 오이켄의 ‘질서자유주의’도 ‘신자유주의’의 한 흐름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2.신자유주의의 대두 배경
1970년대 서구에서는 높은 실업률, 인플레, 경기 후퇴라는 전반적인 악조건에 직면하였다. 경제만 침체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창조적인 분위기나 생동감이 저하되는 현상이 함께 나타났다.
이 때문에 케인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 등 이른바 ‘과도한 국가개입정책’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일어났다. 이와 같은 반성과 비판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주의와 이를 토대로 한 사회경제정책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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