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역사, 복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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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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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빈곤의 역사, 복지의 역사
허구생 지음
제1장 역사속의 빈곤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을 정의하고 빈곤을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그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빈곤선 설정의 기술적 하한선은 개인이나 가족의 육체적 생존 지체가 위협받는 소득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빈곤을 단순히 물질적 결핍 상태로만 정의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 빈곤선의 설정은 특정 사회의 경제발전 단계, 문화와 관습, 지배적 가치 그리고 역사적 경험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빈곤은 역사적으로 사회적 지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는데, 중세에 빈민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경멸이었다. 그러다 근대에 들어서는 빈곤을 하나의 경제적 현실로 인식하면서 비자벌적 실업의 존재를 확인하기 시작하였지만 그들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지는 못하였다. 빈민들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주로 경멸과 경계(공포)였지만, 동정 또한 존재하였다.
제2장 기독교와 자선
서양의 고대 사회의 정책들은 대부분 특권계층인 시민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노예들과는 무관한 정책들이었다. 하지만 로마제국 말기와 중세부터 기독교적 전통으로부터 나온 교부들의 가르침은 현 서양의 복지 정책 발전하는데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빈곤은 겸손과 동의어로 여겨졌지만, 여기에는 자발적 빈곤과 비자발적 빈곤 두 가지가 존재했다.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한 기독교인들의 이상적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자발적 빈곤은 찬양받았지만, 비자발적인 물질적 결핍은 여전히 천시받았다. 중세시대에 교회는 자선의 제도화와 함께 빈민구제라는 집단적 책임을 수행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선을 기독교적 구원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구원의 수단으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제3장 중세 빈곤과 자선의 실제
1. 중세 초기의 빈곤
전쟁이나 흉악범죄와 더불어 542-544년에 발발한 흑사병은 중세 초기 빈곤의 주된 원인이었다. 7세기 들어 전형적인 빈민들은 자유농 출신들로 풍토병이나 힘겨운 노동, 불충분한 수확 등으로 인하여 이들은 거리로 내몰려 구걸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8세기 중반에 이르러 일부는 땅을 버리고 후견인을 찾아 나섰다. 이때부터 농촌 빈민들은 경제적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전략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샤를마뉴에 의해 카롤링거 왕조가 시작됨으로써 왕과 성직자들이 빈민을 보호의 대상으로 자각하기 시작한다. 농촌 지역의 수도원이 교회 자선활동의 중심이 되어 빈민명부를 작성하고 숙박 시설을 순례자에게 개방하였다.
2. 중세 전성기의 빈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