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개괄과 적용 - 도덕과 교육
-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개괄과 적용 -
1. 이론의 개괄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경험으로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유사한 부분도 많지만 이런 면에서만큼은 분명히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의 방법은 경험적이다. 확실히 그는 실제적인 원리들을 지배하는 것을 탐구하였으나, 플라톤과는 달리 경험의 교육을 따르면서 이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이상주의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주의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원론과는 달리 다원론을 펼쳤다. 그는 모든 본질을 네 가지 원인으로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물은 질료인, 형상인, 운동인, 목적인의 네 가지 범주로 분석할 수 있다. 질료인은 사물을 만드는 재료이고, 형상인은 질료인으로 사물을 만들 때 모범이 되는 모델이다. 그리고 운동인은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실제적인 힘이고, 목적인은 그 사물의 궁극적 목적이다. 따라서 자연은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목적론적 체계이다. 이 체계 내에서 모든 실체는 자기실현과 본질에 의해 허용된 한계 내에서 완전을 위해 노력한다. 이 체계가 작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만물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목적으로서의 완전이 실제로 존재해야 하는데, 그 실체를 "원동자"라고 불렀다. 이렇게 목적론적 세계관은 세계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의 끝에는 목적들이 향하고 있는 궁극적인 끝. 궁극적인 목표가 존재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최고선으로 보았고 그것을 행복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근거는 행복은 우리 모두가 목표로 삼는 목적이며 또 우리는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 행복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행복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다른 어떤 것을 더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의 일반적 견해에 동의하여 행복을 인간의 최상의 선 또는 최고의 선으로 받아들인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이란 일상적으로 말하는 행복과는 조금 다른 의미인 것 같다. 특별히 지칭할 만한 단어가 없기 때문에 가장 비슷한 의미인 행복이라는 단어를 빌려 쓰는 느낌이다. 그 행복이란 인간의 본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본성이란 바로 인간의 이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마다 행복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인간의 본성을 발휘하되 탁월하게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이 탁월함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라 한다. 행복이 우리가 추구하는 객관적 목표라면 덕은 그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태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추구할 때 그것이 언제나 객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매사 객관적인 목표를 선택하는 사람이 윤리적으로 덕 있는 사람이며 윤리적 삶의 목표는 훈련을 통해 이런 덕을 갖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는 것으로 중용의 덕이 있다. 사람은 정념에 영향을 받아 행위를 선택하게 된다. 이 정념과 어떻게 관계 맺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품은 악할 수도 선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정념들은 깊게 관계하면 악이나 그렇다고 억누르기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제거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어긋날뿐더러 불가능하기도 하다.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정념은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정념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다만 여기에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는 것이다. 사치하고 싶다는 정념에 깊게 관계를 맺으면 너무 낭비하고 강하게 억압하면 너무 인색해지는 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중용임을 알 수 있나? 언제가 마땅한 때이고, 무엇이 마땅한 일이며, 또 누가 마땅한 사람들인지 알기 위해서는 ‘실천적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는 건전한 도덕 판단력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양한 문제 상황에서 도덕적으로 선하게 행동하도록 하는 것은 구체적 사례와 경우에 정확하게 적용하는 능력인 도덕적 판단력이다. 이는 추상적인 도덕법칙을 암기한다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 상황에서 일반적 법칙을 적용하는 훈련을 통해 점차 성숙해 나가는 것이다. 즉 우리의 일상이 도덕적 반성의 현장이라는 것이다.
2. 나의 경험사례
‘너는 분명 선생님이 체질이구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나는 고지식한 원리 원칙 주의자였고 그것은 21살이 된 지금도 그리 바뀌지 않았다. 자동차에 타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큰일 날 것처럼 설쳐대고 친구들이 모두 무단횡단을 하여도 파란 불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느라 결국 친구들이 반대쪽에서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이 나였다. 뉴스를 보며 투쟁을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비쳐지면 학생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불법 시위나 한다며 열을 냈다. - 내가 투쟁을 하게 될지는 꿈에도 생각 하지 못했다. - 초등학생이 그러고 있는 모습이 부모님은 어이없었는지 후에 말하시기를, 너는 중도를 너무 모른다 하셨다. 너무 원리 원칙만 강조하다보면 너무 팍팍하지 않느냐, 꼿꼿한 나무는 결국 비바람에 부러지기 쉽다는 말을 하셨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