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론 김기택 시집 바늘구멍 속의 폭풍
김기택 시인은 낯설지 않은 사람이었다.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떠올린 느낌이다. 이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긴다.
먼저, 그의 시집에서 아주 익숙한 시들을 찾을 수 있었다. 가장 처음부터 맞아주는 ‘밥 생각’부터 ‘한 명의 육체를 위하여’, ‘멸치’, ‘새’ 등등 고등학교 시절 만났던 시들을 다시 한 번 만났다. 그 당시엔 시도 단지 시험문제가 될 수 있는 것 중 일부라고 밖에 여기지 않았던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기억을 했지만 이 시를 쓴 시인이 김기택이라는 걸 이제야 깨닫는 것일 테니 말이다. 고등학생 시절 배웠던 시를 다시 읽게 된 기분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느낌이었다. 그리 낯설지 않으며 반가운,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어서 그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아주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시집에 있는 대부분의 시의 제재는 그리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아주 흔한 것, 어쩌면 너무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이라 우리가 하루에도 여러 번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을 그는 한 편의 시로 탄생시키고 있었다. 벽 사이에 생긴 틈이나 늘 곁에 있을 공기 중의 먼지와 같은 것들, 때로는 꾸벅꾸벅 조는 모습과 울음이 터지는 모습들도 그에게는 있어서 아주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김기택 시인은 사물과 행동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고 뛰어난 집중력을 보이며 마치 탐구하듯 시를 써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소재는 사소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문장의 표현력은 매우 뛰어났다. 존재하지만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워 ‘그런 것’이라고 매듭지어버리고 마는 느낌을 분명하게 글로 옮겨놓은 것만 같았다.
그의 시에는 ‘말’이라는 시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시 ‘뱀’에서는 평생을 부지런히 지껄여 말을 내뱉어야 몸속의 열기가 살가죽을 터지지 않게 한다고 했고, ‘주정뱅이’에서는 만취한 사내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넘어진 채 욕지거리를 해대는 것을 토사물 쏟듯이 내뱉는다고 했다. ‘중얼중얼중얼’, ‘망가진 사람’ 등의 시에서 말이라는 주제가 자주 나타났다. 그런 ‘말’과 더불어 ‘마음’도 뒤따라 다녔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추상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좋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 중 시선을 한참 머무르게 한 시가 있다. ‘마음아, 네가 쉴 곳은 내 안에 없다.’인데 시집을 읽기 전 목차를 쭉 읽어내려 갈 때부터 가슴 한구석을 잔잔하게 울리는 제목이었다. 그런 기대를 충족시키기라도 하는 듯 그 내용은 잔잔한 울림이 되어 다가왔다.
시의 시작은 여느 시와 비슷하게 한 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을 묘사하며 흘러갔다. 자고 먹고 그러다 이것저것 들춰보고, 딱히 그 뿐이 할 일은 없지만 괜히 때가 되면 화장실을 다녀온다. 이 상황만 두고 생각해보자. 정말 지극히 평범해서 영양가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시인은 이를 두고 ‘하나의 정교한 물시계’, ‘몸이 버린 물들이 고이는 것’, ‘눈금이 모두 채워지면 방광이 종을 울린다.’와 같은 비유를 통해 그 상황을 시로 이끌어 냈다. 그리고 마음을 울린 것은 그 다음 연부터였다. 아주 오래 전부터 많은 일들이 스쳐가는 데 그것들은 전부 뭐가 됐을까 라는 궁금증이 나타난다. 우리의 하루만 해도 참 많은 것이 생기고 변하고 사라진다. 오늘 아침 식탁 위 밥그릇에 담겨 있던 밥을 내가 먹어버리면 그 밥은 사라진다. 하지만 밥은 내 몸속으로 들어가 다른 물질이 되거나 몸의 일부가 되고 배설물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시에서는 머리카락이 되어 깎이기도 하고 기운으로 소모되어버리기도 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다 분명 ‘말’로 새어나간 것도 있으리라고. 변한 것들도 변한 나름대로 결국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없어져버렸다고 해서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진 않는다. 말은 생각이 되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를 반복하다 기억이 된다. 그러다 별안간 떠올라 슬픔에 무너지기도 기쁨에 즐거워하기도 하는 마음으로 바뀌고, 그런 마음은 울음이나 웃음과 같은 표정과 행동으로 또 다시 바뀐다. 마치 꼬리잡기라도 하듯이 계속해서 바뀌며 소모되었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하진 않는다. 여전히 한 쪽에 자리한 채 가끔은 알아달라고 아우성친다. 그래서 나는 표정과 행동으로 바뀌는 것이 이런 마음의 마음을 대변하는 장치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꼭 표정과 행동이 아니더라도 저 깊숙한 곳에 묻혀있는 기억들 또한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고자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런 심정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 구절을 읽을 때는 머리가 멍했다.
‘아무리 편하게 몸을 누이고 있어도 마음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뒤채고 끙끙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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