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와 교육문제-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차별화감각이란 무엇인가 청담동 엘리스를 보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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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차별화감각이란 무엇인가
‘청담동 엘리스’를 보고나서...
드라마 ‘청담동 엘리스’에서 주인공 한세경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대를 높은학점으로 졸업한 취업준비생었다. 그녀의 좌우명은 ‘노력이 나를 만든다’ 였고 3년간의 고생 끝에 패션계 대기업 아르테미스에 입사하게 된다. 그런데 높은학력에도 불구하고 합격자중 최하위점을 맞았다. 여기서 한세경과 아르테미스 팀장이 생각하는 성공을 위한 조건이 달랐음을 알수 있다. 일반 대중들은 높은 학력자본과 능력만 있으면 계급의 상승이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르디외는 학력자본만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자본은 돈으로 대표될 수 있는 경제자본, 우리가 소위 인맥이라고 말하는 사회(관계)자본, 그리고 학력,취향,안목과 같은 것을 포함하는 문화자본(habitus 라고함) 등 3가지가 있다. 그리고 팀장이 한세경에게 최하점수를 준 이유는 디자이너로서의 ‘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잘한다고 해서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안목’은 자기가 자라온 가정환경, 사회배경에서 자연히 생겨난 취향인 것이다.
부르디외는 이 취향이라는 것이 순수취향과 대중적 취향(야만적취향 이라고도 함)으로 나뉜다고 한다.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어떤 사물의 존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관조’해야 함을 강조했고, 그래야 사물의 본래의미를 표현한 예술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부르디외는 이 ‘관조’가 가능한 계급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류계급이며 반면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동계급은 생활에 실용성 측면으로만 사물을 보기 때문에 사물의 순수 미적 감상이 불가능 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상류계급(부르주아)은 순수취향을 갖게되고 노동계급은 대중적 취향을 갖게 된다. 예를들면, ‘피묻은 도마를 예술작품이라 볼 수 있는지?’를 묻을때, “당연하지! 피묻은 도마도 작가가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다면 충분히 예술작품이 될수 있어” 라고 생각하는 것이 순수취향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도마는 칼질할 때 쓰이는 그냥 도마일 뿐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중적 취향이다. 이는 앞서 말한 ‘안목’과도 같이 학습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계급간의 특징적 차이는 사랑하는 법에서도 상이하게 나타난다. 극중 차승조를 버린 차윤주는 ‘사랑도 비즈니스다’란 말을 하였고 차승조는 그에 반박하며 ‘순수한 사랑은 있다’라고 믿는다. 그리고 한세경의 편지를 보고 순수한 사랑을 느끼며 자기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차승조가 말하는 순수한 사랑이란 배경,돈과 같은 소유물이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보고 사랑해주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왜 부족한 것 하나없이 자란 재벌가 차승조가 그토록 ‘순수한 사랑’에 목메어 하는지를 역설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다음과 같이 3가지 이유를 들어 분석해 볼 수 있겠다. 1.경제적 궁핍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순수함을 추구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춰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비니지스를 떠나서 진정성 있는 호의에 대해 감동받아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갈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3.어릴적부터 부모님께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에 결핍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차윤주가 말한 사랑과 차승조가 말한 사랑은 분명 다르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사랑의 유형은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
사랑을 할 때 인간(A)자체만을 보고 사랑하는 것이 사랑1유형이라 칭한다면 또다른 유형은 인간(A)과 소유물(B)을 함께 다 보고 사랑하는 사랑2유형이다. 부르디외는 여기서 사랑을 할 때 인간과 소유물(A+B)를 함께보고 사랑을 한다면 그것을 잘못된 인식. 즉 ‘오인’ 이라고 말한다. 한세경에 대한 차승조의 사랑과 전남친에 대한 한세경의 사랑이 사랑1유형에 속하고 과거 차승조에 대한 차윤주의 사랑이 사랑2유형에 속한다. 그리고 극중 차승조는 사랑1유형을 원하는데, 드라마의 골짜는 차승조에 대한 한세경의 사랑이 1유형에서 2유형으로 변화하면서 둘 사이에 겪게되는 갈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작가는 사랑1유형과 2형중에 어느것이 옳다기 보다는 한세경과 차승조 사이의 새로운 사랑3유형을 보여주며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맺고 있다. 차승조는 처음엔 상대가 날 어떻게 사랑해주느냐 즉 사랑1유형이냐 2유형이냐를 구분하는데 관심있었지만 엔딩때 스스로가 한세경을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한세경의 환경과 한세경의 사랑이 1유형에서 2유형으로 변화한 과정까지를 더 이해하고 포용하며 사랑하게 된다. 이렇게 둘은 서로가 서로를 완벽히 다 이해할순 없겠지만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겠다 다짐하며 드라마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