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공찬전과 귀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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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설공찬전과 귀신 이야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과 귀신 이야기
1. 시작하며
설공찬전(薛公瓚傳)은 중종대의 학자 채수(蔡壽, 1449~1515)가 창작한 한문소설이다. 주인공 설공찬의 혼령이 저승에서 잠시 돌아와 사촌동생인 설공침의 몸에 들어가, 그의 입을 통하여 저승 소식을 전하는 내용을 다룬 이 소설은 조정의 비판을 받아 금서로 지목되어 보급이 금지되고 작가 채수 또한 파직 당한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은 원래 제목만 전해오다가 1996년에 이문건(李文楗)이 쓴「묵재일기」의 이면에 한글로 기록된 것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설공찬전》은 조선왕조 최대의 필화(筆禍)사건을 일으킨 작품으로《조선왕조실록》중종 6년 9월 2일조 이하의 기사에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작품은 윤회화복(輪廻禍福)에 관한 이야기로서, 경향 각지에서 그 내용을 믿어 이를 한문으로 베끼고 국문으로도 번역해 전파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모았던 작품이다. 그러자 사헌부에서는 이 작품이 민중을 미혹하게 한다는 이유로 중종에게 이 작품의 수거를 허락해 줄 것과 숨기고 있다가 발각되는 경우 처벌케 해달라고 요청하여 마침내 왕명으로 모조리 수거되어 불태워진 작품이다. 한편 작자 채수는 중종반정의 공신이면서도 이 작품을 쓴 죄로 교수형에 처해질 뻔하였으며, 중종의 배려로 사형만은 면하였으나 파직당하고 말았다.
채수는 왜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작품을 썼을까? 왜 귀신 이야기인가?
2. 왜 귀신 이야기인가?
이 소설이 국문으로 번역될 만큼 인기를 모았던 이유는 한을 품고 죽은 영혼은 저승에 가지 못하고 일정 기간 떠돈다는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주었고 당대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던 ‘전기담’이나 혹은 우리 민족 내면에 깊숙이 흐르는 무속 신앙을 소재로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채수(蔡壽)는 이와 같이 민중들과 친숙한 원귀, 공수, 빙의(憑依)현상, 양귀(禳鬼)의식 등을 작품에 도입함으로써 흥미를 주고. 교훈(주제 의식)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귀신을 소재로 창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채수(蔡壽)가 귀신 이야기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작품 말미에 공찬의 저승담 진술에서 유추할 수 있다. ‘반역을 일으켜 임금 자리에 오른 주전충과 같은 자는 저승에 가서도 지옥에 떨어진다는 구절인데 이는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한 중종반정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채수 자신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눈에 띄는 대목은 여성에 대한 기술이다. "이승에서 비록 여편네 몸이었어도 약간이라도 글을 잘하면 저승에서 소임을 맡아 잘 지낸다"며 저승에서는 남존여비가 없음을 전하고 있다. 이 두 발언은 왕권을 모독하고 조선의 존립 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발언으로 극형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훈구파 중 한 사람이며 세조 14년(1468년) 장원급제해 주로 실록편찬에 관계할 정도로 정통 유학자였던 그가 귀신이야기를 작품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아마도 당대의 삶에서 보여지는 공통적인 신앙 현상 즉, 무속 신앙에 기반을 두고 이야기함으로써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당대의 부조리를 비판하려는 의도라고 여겨진다.
3. 과 귀신
에 등장하는 귀신은 귀신 서열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처녀 귀신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몽달귀신 즉, 총각이 되어 결혼도 못하고 죽은 귀신이다. 우리 무속 신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신이다. (대표적 처녀 귀신은 손각씨(孫閣氏)이다. 묘령의 나이가 되었으나 春情을 알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난 처녀의 혼이 견디다 못해 마침내 악귀가 되엇 대대로 그 집을 저주하고 다른 처녀에게 해를 미친다는 일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