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원의 교육개혁론과 현대교육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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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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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유형원의 교육개혁론과 현대교육적 의미
- 목 차 -
Ⅰ. 머리말
Ⅱ. 유형원의 생애와 학문적 배경
1. 생애와 저술
2. 학문적 배경과 영향
Ⅲ. 공교육체제의 개혁과 교육
1. 각급학교의 제도와 교육
2. 공거제(貢擧制)를 통한 인재선발과 교육
Ⅳ. 유형원의 교육개혁론이 현대교육에 주는 의미
Ⅴ. 맺는말
Ⅵ. 참고문헌
Ⅰ. 머리말
현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또 비판받고 있다. 그 이유는 교육이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입학시험의 도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고교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을 정부에서 펼치고 있지만, 궁극적인 대입에서는 입학시험인 수능이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가지고 있어 이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필자는 조선시대 실학사상에 영향을 끼쳤던 유형원의 교육개혁론을 통해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인한 학교교육의 부실화 현상을 바라보고 또 대책을 찾아보고자 한다.
Ⅱ. 유형원의 생애와 학문적 배경
1. 생애와 저술
실학의 제일조(第一祖)로 일컬어지는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이다.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유관(柳寬)의 후손이다. 그의 부친 유흠은 예문관 검열(檢閱)을 지낸 학자로서 문학적 명성이 있었으나, 1623년(인조 1) 유몽인(柳夢寅)의 옥사에 연좌되어 28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이로써 볼 때, 그의 집안은 본디 북인(北人)계열이었으나 인조반정 이후 북인이 몰락하면서 남인 계열로 흡수된 듯하다.
반계는 어려서 외숙인 감사(監司) 이원진(李元鎭)과 고모부인 판서 김세렴(金世濂)에게 배웠을 뿐 뚜렷한 사승(師承)없이 독학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일찍이 조부의 엄명으로 감시(監試)와 정시(庭試)에 응시하였으나 두 차례 모두 실패하고는 곧 사환(仕宦)을 단념하였으며, 33세 때 가서야 겨우 진사시에 급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23세 때 조모상, 27세 때 모친상, 30세 때 조부의 상을 당하는 등 가정적으로 불운이 연속되었는데, 32세 때 조부상을 마치고는 마침내 전라도 부안현 우반동에 복거(卜居)하여, 그곳에서 1673년(현종 14) 5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을 처사(處士)로 지내면서, 고금의 수많은 전적을 쌓아 놓고 독서와 사색, 저술로 일관하였다. 그가 말년까지 정거(定居)하였던 우반동은 유형원이 ‘반계’라는 호를 갖게 된 인연이 있기도 하다. 몰후(歿後) 70여 년 뒤 1694년(숙종 20)에 부안 유림의 공의(公儀)로 동림서원(東林書院)에 주향(主享)되었다.
반계는 세상을 떠난 뒤 약 1백년 동안은 명성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1770년(영조 46)에 왕명으로 『반계수록』이 간행되면서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북학파 실학의 거장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허생전에서 다음과 같은 유형원의 경륜을 높이 평가하였다.
예로부터 세상에 숨어 지내는 이가 어찌 한 둘에 그치리요 마는, 조성기(趙聖期) 같은 이는 적국에 사신으로 갈 만한 포부가 있으면서도 벼슬 한 번 하지 않고 늙어 죽었으며, 유형원 같은 이는 전쟁을 당해서 수만 대군의 군량을 댈 만한 경륜이 있으면서도 바닷가에 숨어 세상을 보냈다.
반계의 진면목은 실로‘경륜’에 있었던 것이다. 반계는 우반동에서 20여 년간 은거하면서 왕성한 탐구욕으로 연구, 저술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는 학문 범위를 보면, 정치 경제 군사 교육 사회 등 당면문제는 물론 역사 지리 언어 철학 등 각 방면에 걸쳐 섭렵하지 않은 바가 없을 정도로 광범한 것이어서, 그야말로 백과전서적인 박학자라 하기에 알맞다. 『반계연보』에 의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