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이론과 초등교육에의 적용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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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칸트 이론과 초등교육에의 적용 방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칸트 이론과 초등교육에의 적용 방안
1. 이론적 배경
(1) 선의지
칸트는 그의 윤리설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선의지에서 출발한다. 선의지란 옳은 행동을 오로지 그것이 옳다는 이유에서 항상 선택하는 의지를 말하는데 그것은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는 마음이나 자연적인 경향을 따라서 옳은 행동으로 쏠리는 의지가 아니라 단순히 어떤 행동이 옳다는 바로 그 이유로 말미암아 그 행동을 선택하는 의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선한 행동의 동기는 전적으로 개인의 성향과 자기이익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의지의 인간은 의무에 맞게 행동할 뿐 아니라 의무 자체를 위해 행동한다. 이것은 그가 옳은 행위를 하는 유일한 동기는 그 행동이 옳은 행동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옳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한 사람이 단지 그런 종류의 행동을 하기 좋아하므로 또는 그 행위를 하면 자기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옳은 것을 행한다면 그에게 있어 도덕적으로 칭찬할 만한 점이라고는 전혀 없다.
칸트 이전의 철학자들의 경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스토아학파는 이성을,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을, 흄은 동정심을 선한 것 혹은 좋은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모두 선한 것 혹은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를 물었으나 칸트는 순수한 의미의 도덕성을 묻는다.
순수한 도덕성이란 우리의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당위와 강제의 의식으로, 칸트는 처음으로 도덕적 강제의 본질적 의미를 윤리학에서 제기했다는 점에서 처음으로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던 소크라테스와 같은 위치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의 윤리학이 선한 것 혹은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탐구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행복에 이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선에 대한 동경이 행복을 추구하는 욕망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된다면 도덕의 가치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칸트는 도덕과 행복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도덕의 가치는 행복에 의존하지 않으며 도덕은 그 자체로 정당하며 그 자체로서 숭고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칸트가 행복을 무시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행복을 도덕과 일치시키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칸트에게 있어서 의지와 상관없는 것들은 모두 도덕의 영역밖에 속하게 된다. "선의지 이외에는 무조건적으로 선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세상에서는 물론이고 이 세상 밖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에 잘 나타나 있듯이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좌우될 수 있는 것만이 도덕적 의무가 될 수 있으며 의지로써 어쩔 수 없는 것은 도덕적 책임의 영역 너머에 속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행복하고 슬기롭고 건강하고 등의 덕목도 의지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능, 지식, 감각 등을 통해서 생겨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는 타산적 사려에 의한 행위이지 결코 도덕적 행동이라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칸트에 의하자면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도덕적인 책임이 없다. 인간은 도덕 법칙에 대해서 의무를 갖게 되는데 이는 인간이 책임질 유일한 것으로서 이성적 의지에 의해서 자유롭게 복종해야 하는 비경험적이고 비사실적인 원칙이다. 도덕 법칙은 생겨날 결과에 대한 고려 없이 복종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결과가 도덕 법칙에 비추어서 평가되는 것이지 법칙이 결과 때문에 복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칸트는 천국이나 지옥은 도덕적인 동기를 유발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며 신에 의해 지옥에 보내어질까 두려워서 악행을 삼가는 것은 도덕적 인격으로 행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 기계와 같이 행동규범을 합법칙적으로 준수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천국에의 약속이나 지옥에의 위협은 사람을 도덕적 인격으로부터 동물과 같이 도덕과 무관한 존재로 격하시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강제된 행위도 도덕적 행위가 아니며 도덕 외적이거나 도덕과 무관한 행위이다. 어떤 행위가 도덕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외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율적인 의지에 의해서 유발된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도덕성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고 도덕성에 부합되기만 하는 행위는 도덕적 의의를 갖지 못한다.
선의지는 그것이 생기게 하는 것이나 성취한 것으로 말미암아, 또 어떤 세워진 목적 달성에 쓸모 있음으로 말미암아 선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의욕함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 그 자체로 선한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 고찰할 때, 그것에 의해 어떤 경향성, 아니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모든 경향성들 전체를 위해 이루어 낼 수 있을 모든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은 운명이나 계모와도 같은 자연의 인색한 지원으로 인해 이 의지와 자기의 의도를 관철시킬 능력을 전적으로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 의지의 최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에 의해서는 아무것도 성취되지 못한 채, 오직 선의지만이 남는다 할지라도, 선의지는 보석과 같이 그 자체만으로도, 그 자신 안에 온전한 가치를 가진 어떤 것으로서 빛날 터이다.
유용성이나 무익함이니 하는 것은 이 가치에 아무것도 증감시킬 수 없다. 그런 것은 말하자면 단지 포장 같은 것이어서, 그 보석을 일상의 거래에서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거나, 또는 그걸 충분히 잘 모르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한 것으로서, 그 보석을 잘 아는 사람에게 그 보석을 추천하고 그 가치를 규정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2) 준칙과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