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상적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교육관을 서술하시오
◆교육사상적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교육관을 서술하시오.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은 내가 중학생 때 필독도서였다. 그 때 당시에 그림도 다른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고 얇아서 부담없이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다시 읽으면서 정말 필독도서답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두께에 상관없이 이 책을 읽으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어린아이들이 변화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해준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우리의 모습을 닮은 줄무늬 애벌레는 “삶에는 그냥 먹고 자라나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지 않겠는가”라는 구절을 통해 인간이 단순히 성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욕구를 원하는 것과 그 중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배움의 욕구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줄무늬 애벌레는 새로운 것을 찾아 자기에게 서늘한 그늘과 먹을 것을 제공해 주던 다정한 나무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는 마치 자신의 태어나고 유일한 공간이었던, 가정에서 학교나 사회로 확장시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것들을 접하게 되는 장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부모 곁을 떠나 학교에서 또래집단을 만나게 될 것이고 애벌레가 나무 아래의 모든 것이 그를 황홀케 하지만, 이내 의욕을 상실하고 하늘 높이 치솟은 기둥 하나를 발견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아이들 또한 그렇다.
기둥에 오르기 시작한 줄무늬 애벌레는 처음에는 그 꼭대기에 오르면 무엇인가 의미있고 대단한 것을 찾지 않을까 자신의 비전을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다른 애벌레들을 짓밟고 올라간다. 애벌레들은 아무도 설명해 줄만한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으며, 그 속에서 친구란 존재할 수 없었으며, 동료들이란 다만 하나의 위협이요 장애물일 뿐이었다. 애벌레는 왜 꼭대기를 오르는지,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면서 단지 다른 애벌레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위로 계속 오른다. 마치 우리나라의 입시제도 속의 아이들을 보는듯 하다. 지식의 습득만이 교육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참교육의 한 과정으로 여겨져야할 것이다. 또한 학생들 뿐만 아니라 여기서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하여 남을 짓밟고 오르는 매정한 현대사회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교육이란 것을 받고 자란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에 나가기 전까지의 교육들이 정말 참교육이고, 올바른 교육이었더라면, 오늘날의 사회가 남을 짓밝고 일어서야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의 교육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성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만일 이들이 서로서로 도우면서 그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면 목표에 도달하기 까지 조금 더 쉽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렇게 오르는 줄무늬 애벌레는 옆에 있는 다른 애벌레들에게 꼭대기에 왜 올라가냐고 묻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남들이 하니깐 올라간다고 하였다. 삶의 뚜렷한 목적이나 비전없이 그저 남이 하니깐 따라 하는 현대인들의 무능력한 행동과 의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애벌레 기둥 속에서 불안함을 느끼던 줄무늬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를 만나게 된다. 경쟁만이 존재하는 기둥이란 세상 속에서 둘은 편안함을 느끼는 안식처를 제공한다. 거기서 내려가기로 하는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다. 잠시나마 그 경쟁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결정을 하기가 힘들다. 무한한 경쟁을 하는 주변환경가운데, 경쟁을 포기함으로써 자신만 도태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내가 이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뒤쫓아 올라와 자신을 밟고 다시 올라 설 것 같은 불안함과 초조함 때문에 줄무늬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와 같이 기둥에서 내려오고자 하는 결정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곧 줄무늬 애벌레는 다른 곳을 생각하게 된다. 다 알아버린 노랑 애벌레를 넘어서는 의미 있는 것을 찾기를 원하는 것이다. 옛날에 오르던 꼭대기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던 줄무늬 애벌레는 사랑하는 노랑 애벌레를 남겨두고 다시 그 기둥을 찾게 된다. 가는 도중에 떨어져 있는 애벌레들을 보지만, 그들의 모습은 줄무늬 애벌레에겐 기둥의 정상에 오르게 하는 또 하나의 자극제가 될 뿐이었다. 이 부분에서도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는데 익숙해져 이제 동료보다 앞서는데 희열을 느끼고, 오히려 그것이 자신에게 자극이 되어 더욱더 앞서 나가는 것이 현대인들의 교육의 실태이며, 그렇게 가르친다. 경쟁이 나쁘다는 얘기보다는 얼마나 안타까운가? 내 친구가 나보다 성적이나 실적이 떨어짐에 의해 나는 더욱더 진보할 수 있다는 사실. 안타까운 현실인 것이다.
한참을 쉬었던 줄무늬 애벌레는 더욱 치열하게 죽기 살기로 그 기둥을 오르게 된다. 오르던 도중 정상에 다녀왔다는 애벌레들은 그 꼭대기에 아무 것도 없다고 충고하지만, 결국 줄무늬 애벌레는 정상에 도달하고야 만다. 이러한 애벌레의 모습은 우리보다 먼저 삶을 살아본 사람들, 인생의 선배들의 충고는 귀담아 듣지 않고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계속 정상에 오르려는 부질없는 현대인들이다. 그러나 정상에 있는 것은 겨우 다른 애벌레들의 기둥뿐이었다. 우리는 그 애벌레들의 기둥 뿐인 부질없는 목표를 위해 남을 짓밟고 쓰러뜨리고 상처를 주며 엄청나게 싸운다. 하지만 그 정상은 아무것도 없다. 성공해봤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쓰러져 있는 친구들과, 그저 그 보이지 않는 정상을 오르려는 다른 사람들을 또 밟고 오르는 다른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살기 위해 남을 밟고,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해 남을 밟고.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일까? 또한 그렇게 무엇인가를 얻는 다고 해서 무엇이 기쁘겠는가?
그 사이 노랑 애벌레는 단지 남들이 다해서 하는 그러한 정상을 오르는 것을 택하기 보다는 자신에 대해 더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러다가 늙은 애벌레를 만나게 된다. 그는 줄무늬 애벌레가 미리 그 길을 걸었던 사람의 말을 무시했던 것과는 달리 그의 조언을 따른다. 그의 경험과 확신을 믿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와 다른 것을 얻게 된다. 누군가를 경쟁자로서 배척하고 밟는 것이 아니라 조언자로 나의 앞에 도움을 주는 자로서 받아들이고,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임으로서 인생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결국 노랑 애벌레는 예쁜 나비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어떤 존재로 만들어 갈 것인가를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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