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가(월명사가. 경덕왕 19년. AD.760)
一. 序論
오늘날 전하는 『도솔가(兜率歌)』에는 신라 유리왕(儒理王) 5년에 지었다는 『도솔가(兜率歌)』와 경덕왕(景德王) 때의 가승(歌僧)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도솔가(兜率歌)』의 두 가지가 있다. 이제 논고에서 논급하려는 『도솔가(兜率歌)』는 이 두 가지 중에서 후자가 그 대상임을 우선 밝혀 둔다.
「삼국유사(三國遺事)」권5, 에 나타난 月明師 兜率歌의 기록을 보면,
月明師 兜率歌 姜吉云, 鄕歌新解讀硏究, 서울 : 學文社, 1995. p.191~192.
경덕왕 19년 경자 4월 초하룻날 해가 둘이 나란히 나타나서 열흘이 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천문을 맡은 관리가 말하기를 인연이 닿는 중을 청해 散花功德(부처님 앞에 꽃을 뿌려 그 공덕을 비는 일)을 행하면 변괴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원전(朝元殿)에 단을 만들어 놓고 청양루(靑陽樓)로 나가서 인연이 닿는 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월명사(月明師)가 언덕 있는 남쪽 길로 지나가는 것을 불러들이라고 해서 제단을 열고 의식을 시작하게 하였다. 월명사가 말하기를 소승은 단지 화랑의 무리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오직 향가만 알 범패에는 익숙지 못합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미 인연이 닿는 중으로 맞아들이었으니 비록 향가를 써도 좋다. 월명사는 곧 도솔가를 지어 읊었다. 그 가사에 이르기를 『(가사 원문)』라고 하였다. 龍樓此日散花歌(용루차일선화사)/挑送靑雲一片花(도송청운일편화)/鄭重直心之所使(정중직심지소사)/遠邀兜率大 家(원요도솔대 가)고 하였다. 해석하기를 용루에서 오늘 산화가를 불러 푸른 구름에 한 떨기 꽃을 보내니 은근하고 곧은 마음으로 멀리 도솔천의 큰 신선을 맞이하라고 하였다. 지금 세상에서 이것을 산화가라고 하나 잘못이다. 마땅히 도솔가라고 해야한다. 따로 산화가가 있는데 글이 길어서 싣지 않는다. 이미 해의 괴변이 곧 없어졌다. 임금이 이것을 가상히 여겨 좋은 茶 한 봉과 수정(水精)염주 백 여덟 개를 주었다. 그때 한 아이가 갑자기 얼씬 나타나 몸가짐을 깨끗이 하고 꿇어앉아서 차와 염주를 받아 가지고 왕궁 서쪽의 작은 문을 향해 나갔다. 월명사는 왕궁 내전의 심부름하는 아이거니 하고, 임금은 월명사의 상좌이거니 하였으나 신의 그윽한 상징이어서 둘 다 아니다. 임금이 매우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쫓아가게 하였더니 그 아이는 왕궁 안절의 탑 속으로 들어가 숨고, 차와 염주는 그 절의 남쪽 벽에 붙은 미륵부처 화상 앞에 놓여 있었다. 월명사의 지극한 덕과 지극한 정성으로 부처를 감동시킨 것이 이러하였다. 조정과 민간에서 들어 알지 못하는 이 없었고, 임금은 더욱 그를 존경해서 다시 비단 백 필을 주어 그 큰 정성을 표창하였다.
원문
月明師兜率歌
景德王十九年庚子四月朔 二日竝現 挾旬不滅 .日官奏 「請緣 作散花功德則可穰」.
於是 潔壇於朝元殿 駕辛靑陽樓. 望緣. 時有月明師行于阡陌(時)之南路.
王使召之 命開壇作啓. 明奏云「臣但於國仙之徒 只解鄕歌 不閑聲梵.」王日「卜緣 雖用鄕歌可也.」
明乃作兜率歌賦之. 其詞曰『가사 원문 생략』. 解曰 「龍樓此日散花歌 挑送靑雲-一片花 殷童直心之所使 遠?兜率大仙家.」今俗謂此爲散花歌矣 宜云兜率歌. 別有散花歌 文多不載. 而怪卽滅. 王嘉之 賜品茶一? 水精念珠百八箇. 忽有一童子 儀形鮮潔 奉茶珠 從殿西小門而出. 明謂是內官之使. 王謂師之從者 乃玄而俱非. 王?異之 使人追之 童入內院塔中而隱茶珠在南壁畵慈氏像前. 知明之至德興至誠能昭暇于至也如此. 朝野莫不聞知王益敬之 便?絹一百疋 以表?誠. 明又?爲亡妹營齊 作鄕歌祭之 忽有驚飇吹紙鐵飛擧 向西而沒. 歌曰 『(가사는 祭亡妹歌조에 실려 있음)』. 明堂居四天王寺 善吹笛 ?月夜吹過門前大路 月馭爲之停輪 因明其路曰月明里 師亦以是著名. 師卽能俊大師之門人也. 羅人尙鄕歌者尙矣 盖時頌之類 故往往能感動天地鬼神者非一. 讚曰「風送飛鐵?逝妹 笛搖明月住姮娥 莫言兜率運天遠 萬德花迎一曲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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