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본론 사교육과 평생교육의 자본화 제6장 교육정책
제6장 교육정책
들어가는 말
2003년 1월 25일 평등과 분배 정책의 이념을 내세운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노 대통령은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시대로’라는 제목의 취임사에서 교육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런 탓인지 참여정부는 교육부총리 임명에 신중을 기하였고, 당시 대구대학교 총장인 윤덕홍 교육부총리를 45대 교육부장관으로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할 교육부총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교육개혁에 대한 의지만 강했을 뿐, 뒷받침할 만한 교육혁신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교육부장관들의 정책 추진 양태
노무현 정권 아래 교육부 수장은 5번이나 바뀌었다. 각각의 장관들은 노무현 정치권력에 상응하는 교육정책 입안과 실천에 소신을 보여주었지만 국민의 교육적 열망에는 부응하지 못했다. 45~49대 교육부장관들은 각기 정치적으로 읍소, 미소, 실소, 응소, 고소의 모습을 보이면서 퇴장했다.
1) 45대 장관의 읍소(泣訴)
45대 교육부장관으로 취임한 윤덕홍 장관은 역대 장관에 비해 기대 이상의 업적을 낼 수 없었다. 그는 임기 중 NEIS(Nationa Education Information System: 교육행정 정보시스템) 문제로 시달렸고, 그 동안 교육계는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서로 극을 향해 양분되기 시작했다. 한 지방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은 그러한 현실을 반영했다. 윤 장관은 취임 10개월도 넘기지 못한 채 2003년 12월 17일 NEIS, 수능논란 등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2) 46대 장관의 미소(微笑)
46대 교육부장관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 교육부장관을 지냈던 안병영 교수였다. 그는 공교육과 엘리트 교육의 균형발전을 강조하면서 학교교육과 사교육이 보완관계를 갖게 하면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교육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취임 후 1년을 겨우 넘기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부정행위사건으로 대통령을 위한 희생양이 되어 경질되었다. 안 장관의 정책 역량과 추진에 대한 평가는 전임 교육부장관에 비해 월등히 높았고, 그의 경질에 대해 언론은 이례적으로 아쉬움을 전했다.
3) 후대 장관들의 실소(失笑)
노 대통령은 다음 인사로 전문가보다는 정치인을 선택했다. 많은 민간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했던 국가공무원이자 국회의원인 김진표 씨를 48대 교육부 수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시장경제주의자였기 때문에 사교육시장에 대해서도 호감을 갖고 있었고, 학교교육에서 교육적으로 아이들이 얻는 게 없다면 학교가 정신을 차리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다. 김 장관은 시장경제, 일종의 실력주의 교육관이 한국 교육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지만, 참여정부의 교육코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자신의 경제적 소신과는 달리 3불 입장을 그대로 유지, 즉 경쟁주의, 실력주의 교육정책의 추진을 거부하겠다고 노 대통령에게 응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교육적 기대는 컸지만, 그가 국민에게 보여 준 정치적 생존술은 기대 이하여서 국민들의 거센 저항을 자아냈고, 한여름 학교급식 사건을 기화로 교육부 수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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