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 감상문 영화 아이엠 샘
사랑에 각박한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교 입학 전과 수능 끝난 후, 두 번을 보았다. 볼 때마다 매번 가슴이 찡해지는 감동을 고스란히 느꼈던 기억이 난다.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 샘이 딸인 루시를 너무도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인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샘이 가지는 지적장애는 일반적인 부성애마저 이룰 수 없게 만드는 불편하고 가슴 아픈 사회적 조건임이 분명했다. 영화 내에 깔린 이러한 사회 구조는 내 가슴을 꽉 오그렸다. 분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단지 장애를 가진 아버지라는 타이틀만으로, 딸과의 소소한 행복마저 방해하는 사회라면 굉장히 불평등한 것이 아닌가.
영화에 나오는 샘은 정신 지능이 7세 밖에 되지 않는 지적장애아이다. 아이를 낳자마자 도망가 버린 아내 탓에, 그는 홀로 딸 루시를 키우게 된다. 샘에게 딸은 세상의 전부이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이고 행복이다. 둘은 레스토랑이나 비디오 게임방 같은 곳들을 놀러 다니며 둘만의 즐거움을 찾는다. 시간이 흘러 루시가 7살이 되자 아버지라는 존재에 현실성이 더해지고, 그의 지능을 추월하는 것이 두려워 심적 갈등을 겪게 된다. 사회복지관에서는 샘이 딸에 대한 양육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루시를 시설로 옮겨 일주일에 두 번만 볼 수 있도록 한다. 이에 샘은 변호사를 찾아가 딸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온갖 노력을 하게 된다.
우리 곁에 부모의 무게감은 새털처럼 가벼운 것 같지만, 실로 엄청나다. 당연하다고 느낄 정도로 삶 속에 깊숙이 내재 된 부모의 사랑은 지능이 7세인 부모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는 자식들에게도 동일하다. 지금 당장 같이 살던 부모와 떨어져야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청천벽력이다. 시설이 루시를 맡는 것이 아이의 인생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인생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아이의 마음에는 얼마나 치명타를 날릴 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우리는 부모란 존재를 매일 느끼고 믿고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런 든든한 버팀목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다면, 세상엔 나 홀로 밖에 남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자명하다.
나는 사회를 향해 과연 딸과 아버지를 생이별시킬만한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아이가 받게 될 공허함과 허전함을 아버지보다 더 확실히 채워 줄 수 있는가. 장애라는 조건 하나가 부모와 자식을 갈라놓을 만한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제약인가. 정말 억울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분했다.
남들 눈에 샘은, 루시가 자라면서 겪게 되는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변화에 제대로 대응조차 할 수 없는 무능하고 덜 떨어진 저능아로 보일지 모른다. 영화 중반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샘, 그냥 샘이라고 불러주세요.
이 대사와 영화 제목을 묶어 생각하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항상 장애는 틀린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것이다라고 말한다. 장애를 일반인과 틀린 것으로 보는 현재 사회의 모습에 비추어 봤을 때, 이 말은 너무나 형식적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샘은 그냥 샘이다. 지체장애아도 아니고 양육 조건을 가지고 있지 못한 무능력한 아버지도 아니다. 딸에게 있어서만은 따뜻하고 멋진 아버지, 샘 그 자체가 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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