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속삭임. 2006년 작품, 국내 2009년 개봉]
제가 처음 소개할 작품은 『천국의 속삭임』입니다. 이 영화는 맹아를 주축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는 작품으로, 이탈리아의 유명한 음향기사의 어린 시절을 각색하여 만든 실화 기반의 영화입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미르코 발레리’(이하 미르코)로 선천적인 장애인이 아닌 사건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시력을 상실하게 된 장애인입니다. 미르코는 집안 부엌에서 엽총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탄환이 발사되어 부엌 선반위에 있던 유리그릇이 깨지면서 그릇의 파편이 눈으로 쏟아져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후 미르코는 일반아동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더 이상 학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맹아들만을 가르치는 특수학교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전학을 간 미르코는 학교에서 첫 친구를 사귀게 되는데, 그 친구의 이름은 ‘펠리체’입니다. 펠리체는 마르코와 달리 선천적으로 시력이 상실된 맹아입니다. 여기서 선천적 장애인과 후천적 장애인의 다른 시각을 볼 수 있게 되는데요. 미르코의 경우 정상적인 삶을 살다가 장애인이 된 자신의 처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세상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그러나 펠리체의 경우 앞이 안 보인다는 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나타내지 않으며, 자신이 장애를 가진 것에 대해서도 수용하는 자세를 보입니다. 여기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선천적 장애인들보다 후천적 장애인들이 장애에 대해서 더 어려움을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라 함은 적응의 동물이라고도 하는 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적응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 말은 곧 그 환경이라는 것에 오랜 기간 적응된 인간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려움이 덜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즉, 장애인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라는 것을 오랜 기간 동안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면 장애의 불편함이 주관적으로는 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후천적 장애인들은 선천적 장애인들에 비해서 장애에 대한 적응의 과정이 짧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선천적 장애인들보다 장애를 더 불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적응의 유무를 떠나서 장애라는 것이 일반적인 정상의 삶보다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는 영화에서 정상아동으로 나오는 ‘프란체스카’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프란체스카는 미르코와 친구가 되게 되는데, 미르코가 할 수 없는 정상적인 삶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영화의 전반에 걸쳐서 나오게 되는데, 예를 들자면 극장에서 표를 사거나, 다른 사람을 쳐다보며 대화를 하는 것과 같은 행동들을 통해 미르코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영화의 막바지에서 프란체스카는 퇴학의 위기에 처하게 된 미르코를 도와주기 위해 맹아는 할 수 없는 행동(자유롭게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합니다. 이 또한 미르코는 실천하기 어려운 정산인인 프란체스카만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정산인과 장애인의 대조,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 장애의 대조가 아닙니다. 이를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는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이러한 편견과는 다른 장애에 대한 진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에서는 미르코와 그의 친구들(펠리체, 프란체스카, 발레리오 등)의 이야기를 통해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편견이란 ‘장애를 가진 자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할 수 있는 것만을 해야 한다.’입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장애인은 곧 정상적인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에서 맹아학교의 교장과 미르코의 부모님과의 대화를 들 수 있습니다.
미르코의 부모님은 말합니다. “미르코가 이 학교를 나와서 졸업을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교장은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미르코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미르코는 여길 나와서 전화 교환원이나 직조공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교장의 말에는 앞서 말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는 마치 한국사회에서 맹인들은 당연하게 마사지사가 된다고 생각하는 편견과 같습니다. 저는 이러한 영화 속 장면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진정으로 그들을 ‘장애를 가진 자’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장애인들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하는 영화 속 인물의 대사는 장애인을 정상적인 일반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보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강하게 주었습니다. 또한 이 대사를 한 교장이라는 인물이 미르코와 마찬가지로 맹인이라는 점에서 사회적인 편견에 의해 자신 스스로를 장애인이라는 울타리 속에 가둬버리고 본인이 인간으로서 지닌 잠재적 실현가능성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현실을 타협하고 살아가는 안타까운 장애인들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교장이라는 존재에도 불구하고, 장애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미르코는 그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지닌 장애가 다른 것이 아닌 조금은 특별(special)한 것일 뿐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특별하다는 것은 장애와 정상을 구분하는 개념이 아닌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사람이지만 능력에 있어 특별함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개념입니다. 미르코의 장애에 대한 인식과정이 바뀌는 것은 우선 글의 서두에 얘기했었던 펠리체라는 같은 맹아 친구의 영향을 받았다가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프란체스카라는 맹인이 아닌 아이가 장애를 자신들과는 다른 것이라 여기고 베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어른들과는 달리 장애에는 신경 쓰지 않으며 미르코를 장애인 미르코가 아닌 인간 미르코로 대함으로써 미르코는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프란체스카와 더불어 미르코의 인식을 전환시켰던 영화의 인물이 있는데, 그는 미르코의 담임선생님(줄리오)입니다. 미르코의 담임선생님은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편견으로 보지 않고 그들의 가능성을 신뢰하는 인물로 나옵니다. 영화에서 교장과는 대조적인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미르코와 그의 친구들이 아직은 사회에 때 묻지 않은 아동들이라면, 교장과 담임선생님은 사회의 일원으로써 성인을 대변하는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담임선생님은 미르코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해왔던 이해하기 난해한 과제물에 대해서 ‘흥미롭고 참신하다’라고 말해주어(이 때 교장은 같은 맹인이면서도 미르코가 해왔던 소리로만 이루어진 과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르코의 가능성에 대해서 부정해버립니다.)미르코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해 존중해줍니다. 또한 영화 막바지에는 미르코가 하는 녹음 활동(영화에서 미르코는 녹음기를 통해 자신의 장애를 극복해 나갑니다.)을 교장으로부터 두둔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미르코의 녹음 활동에 대해서 교장과 담임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선 교장은 “우리(장애인)에게 있어 자유는 사치일 뿐이다. 특히 우리 같은 맹인들에게는 말이지.”, “사회에서는 우리를 위해 기회를 줬고, 우리는 그 기회만 따르면 돼. 그들(장애를 가지지 않은 일반인)은 우리들이 밖에서 살 수 있도록 허용을 해줬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 담임선생님은 교장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째서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기회(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를 주려고 하시지 않는 건가요?”, “미르코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독특할 뿐입니다. 그 애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입니다. 이를 통해 교장과 담인선생님의 장애에 대한 시각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를 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사회적인 편견이 장애인을 진정으로 장애인으로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교장은 본인이 장애인이면서도 장애에 대해서 스스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열등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장이라는 인물이 장애에 대해서 그토록 부정적일 수밖에 없던 이유는 아무래도 사회적인 편견에 가장 많이 직면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교장은 사회의 일원으로써 살아가기 위해 사회가 갖는 일반적인 통념을 인정하고 굴복해버린 것입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담임선생님이라는 인물은 본인이 장애인은 아니지만, 사회적인 통념인 장애에 대한 편견을 수용하지 않고 장애인을 장애가 아닌 같은 가능성을 지닌 인간으로써 보고 있습니다. 그러한 담임선생님의 태도는 미르코에게 영향을 주어, 미르코가 장애라는 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돕습니다. 저는 이를 보면서 사회적인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때 장애인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미르코는 담임선생님을 통해서 자신이 지닌 장애가 세상을 보는 특별한 시각을 제공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닌, 소리를 통해서 세상을 느끼는 것으로 자신을 남들이 경험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능력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미르코는 이를 계기로 하여 장애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자주적이면서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루어나가게 됩니다.
미르코가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방식은 영화에서 소리를 녹음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이 녹음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담임선생님으로, 미르코에게 녹음기를 선물하였습니다.) 미르코는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동화를 주제로 하여 녹음을 해나가게 됩니다. 녹음작업은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되게 되고, 영화의 끝에서는 녹음한 것을 토대로 학부모들에게 소리만 듣는 연극을 진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학부모는 장애를 가지지 않은 일반인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즉, 학부모에게 그동안의 결과물(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을 보여줌으로써 일반인들이 지닌 장애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우회적으로 영화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영화에서는 연극을 보여주면서 ‘상상력’이라는 것을 언급함으로써 학부모들이 소리만을 듣고 상상력을 통해 극을 감상하게 함으로써 맹아들만 볼 수 있는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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