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영화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적 요소 - 압바스키아로스타미 작품에서 나타난 성찰성, 그리고 하이퍼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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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극영화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적 요소
압바스키아로스타미 작품에서 나타난 성찰성, 그리고 하이퍼 텍스트
최근 들어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새롭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예술에 있어서 새로움이란 물론 항구적으로 고려해야할 요소이고 여러 번 강조해도 매번 아쉬운 것이지만 나는 나에게 맞는 새로운 그 무엇에 대해 자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성실한 성격이 아니어서 시중에 나온 책들을 꼼꼼히 분석하고 미래에는 대체 어떤 글이 나올 것인가, 에 대해 분석하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글을 쓰려는 내가 나중에는 어떤 스타일로 글을 쓰게 될 것인지 내가 어떻게 쓰고 싶어 하는지, 그것은 동어반복의 작업(비슷한 이야기를 내 스스로 반복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나도 모르게 반복하는)인지 아닌지, 그게 새로울지에 대해 고민하는 정도이다.
다큐멘터리 수업을 듣게 된 것이 굳이 내 글쓰기에 새로운 그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나는 ‘극영화에서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적 요소’로 진행된 몇 주차의 수업에서 글쓰기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 들었던 ‘성찰성’으로 나는 며칠 동안 새로 쓸 소설과 관련하여 깊이 생각해보려 했었다.
당시 나는 소설창작연구(한 학기에 소설을 한 편의 소설을 제출하고 교수님과 학우들로부터 합평을 받는 형식의 수업)수업에 내야 할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제출일은 다가왔지만 섣불리 쓸 만한 것이 도무지 조합되지 않았고 나는 날마다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그날그날 생각한 것들 , 그날그날 벌어진 일들, 들은 것들을 소설과 연관시키려 부단히 노력했었다. 그러다 수업시간에 ‘성찰성’이라는 단어를 들었고 나는 성찰적 글쓰기는 과연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란의 영화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직접 아들과 출연하여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출연한 두 꼬마 아이를 찾는 과정을 담는다. 코케로 가는 길은 막혀있지만 허름한 차를 끌고 감독은 결국 그들이 사는 마을으로 당도한다. 그는 만나는 사람에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포스터를 들이밀면서 이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냐는 질문을 하기도 하며 영화에 나온 인물들을 만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여정을 담고 있으므로 당시 코케의 상황을 잘 기록하고 있다. 건물은 정처없이 무너지고 감독이 길을 물었던 한 노파는 자신의 가족이 죽은 사실에 대해 울먹이며 토로를 한다. 감독의 아들이 목이 말라 음료수를 사려 하지만 깨어진 진열장 안에 제멋대로 뒹구는 음료수는 따뜻하거나 뜨겁고, 그것을 파는 상점의 주인도 어딘가 사라지고 없다. 아이는 지폐를 꺼내 진열장 안에 넣어놓고 그 뜨뜻한 음료수를 마신다. 코케로 향하는 유일한 길은 막혀있다. 며칠 째 그렇다고 한다. 구호물자를 운반하는 차량이 보이기도 하고 라디오에서는 지진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의 입양을 장려한다.
코케로 가다가 들린 이재민들의 막사촌에서는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안테나를 설치하는 한 사내도 등장한다. 이재민이 되고 가족을 잃기도 했으나 그는 계속 슬퍼할 수만은 없다는 식의 말을 하기도 한다.(이 때에 감독이 사내에게 인터뷰를 하듯 질문을 한다. 왠지 감독이 사람들에게 질문을 할 때는 매번 극적인 요소가 줄어드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그 당시의 코케의 모습을 다양하게 기록하며 나름의 서사를 구축한다. (아이가 오줌을 누는 것과 아빠가 오줌을 누는 것, 숲에서 우는 아이를 만난 것,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속 두 아이를 닮은 아이를 만나고, 그들을 향해 차가 경사진 언덕을 달려가는 것 등) 독일영년에서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2차 세계대전 후 폐허를 담았듯 이 극영화도 많은 기록을 하고 있다.
여러 가지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있겠지만 나를 잡아끌었던 성찰성은 다음과 같다. 성찰,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의미를 좇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그 구조자체가 성찰적일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는 자신이 찍은 영화의 주인공들을 찾기 위해 감독이 배우를 찾아간다. 이 과정 속에서는 분명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따라붙게 된다.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또 다른 인물들 역시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이런 것들을 통틀어 성찰적이라 한다.
자칫 성찰을 반성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보기, 다시 생각하기 쯤으로 여기면서 나는 영화를 보았다. 감독과 그의 아들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출연한 노인을 만나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는 그러했던 것과 실제 그렇지 않은 것(영화 속 자신의 집은 실제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 자신의 몸이 영화 속에서 연출된 요소가 있다는 것 등)에서 얘기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그릇을 찾지 못하자 조연출이 달려와 가져다 주는 모습도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속에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