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자전거 도둑 자전거 도둑 감상평 자전거 도둑 영화 감상문
제목 : 자전거 도둑 (Ladri Di Biciclette / The Bicycle Thief, 1948)
감독 : 비토리오 데시카
출연 : Gino Saltamerenda, Fausto Guerzoni, 난도 브루노
줄거리
영화의 시작은 폐허가 된 도시 어느 직업소개소 앞에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얻기 위해 서로 일거를 달라고 아우성을 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940년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의 거리의 모습이다. 이탈리아는 전쟁이 패해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으나 일거리는 없다. 경제적 궁핍 속에 살고 있다. 주인공 안토니오도 직업을 얻지 못하고 있는 차에 직업을 소개 받는다. 직업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벽보를 붙이는 작업 자전거가 있어야지만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러나 경제적 궁핍으로 자전거를 예전에 전당포에 잡힌 상태이다. 자전거를 찾을 돈이 없는 안토니오는 실망하여 집으로 온다. 결국 부인 마리아는 자신이 아끼는 침대 시트를 전당포에 잡히고 자전거를 다시 찾는다. 이튿날 안토니오가 출근하여 벽보를 붙이 중 자전거 도둑일당에게 도둑맞는다. 자신의 재산의 전부이자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는 자전거를 일어 버린 안토니오는 절망에 빠진다. 경찰에게 신고하나 경찰은 무성이한 대답만 한다. 다음날 직접 자전거를 찾기 위해 친구들과 아들 브르노를 동원하여 거리를 배회한다. 자전거 시장을 뒤져 보았지만 자신의 자전거를 찾을 수 없다. 비가와 비를 피하여 건물 밑에서 기다는 중 자신의 자전거를 훔쳐간 자전거 도둑이 한 노인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전거 도둑을 쫓으나 놓치고 만다. 도둑과 이야기한 노인을 찾아 그에게 물어 보지만 가르쳐 주지 않고 도망간다. 거리를 배회하던 중 자전거 도둑을 찾게 되고 그를 추궁하지만 자전거는 나오지 않는다. 계속 추궁을 하자 그 사람은 거품을 물고 거리에 쓰러진다. 자전거 도둑은 간질 환자였다. 자전도둑이 사는 동네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결국 자전거를 못 찾은 안토니오와 아들 부르노는 동네사람들에 비난을 받으며 쫓겨나게 된다. 자전거를 못 찾은 안토니오와 아들 부르노는 절망하고 자포자기 한 마음으로 거리에 앉아 싸이클 경기를 주시한다. 한쪽 길에 보니 자전거가 서있다. 궁지에 몰린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전거를 훔친다. 그러나 멀리 가지 못하고 바로 잡히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욕을 먹는다. 그에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안토니가 훔친 자전거의 주인은 아들 부르노가 우는 것은 보고 불쌍해서 안토니오를 경찰에 넘기지 않는다. 석양이 지는 로마의 거리 안토니오와 아들 부르노는 사람들 사이를 힘없이 걸어가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의 지식
전후 사회의 빈곤과 모순을 리얼한 영상으로 묘사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거장 데시카의 명작. 흑백 영상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한 인상을 준다. 1948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영화상, 49년 뉴욕 영화 비평가 최우수 외국영화상, 49년 로카르노 영화제 대상 수상.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기본적인 표현양식인 로케이션 촬영, 비직업 배우의 사용, 현실의 사전들을 나열하는 듯 한 화면 구성과 카메라 이동이 돋보이며 이후 이태리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인식되었다.
데시카는 미국의 한 제작자가 유명 배우 캐리 그란트를 안토니오역에 기용하면 돈을 대겠다고 한 제안을 거부했다. 그는 돈과 스타 둘 다를 거부하고 좌절한 아버지 역에 비직업 배우인 한 금속 노동자를 기용했다. 그의 아들역 역시 로마의 신문배달 소년이었다. 은 로마의 거리, 아파트, 사무실 등 거의 촬영소 밖의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다.
은 이렇게 전쟁후 이탈리아의 참담한 굶주림이라는 현실 속에서 가장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보통 사람의 안토니오가 도둑이 되어가는 모습을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그 어느 것도 선악이라 규정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선과 악은 그 사회 속에서 규정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은 사회 속에서 절망한 가정과 그를 자전거 도둑으로 만든 전후 이탈리아 상황을 잘 그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의 무력감은 네오리얼리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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