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누구인가에 대해
단 한 번도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궁금한 적은 없다. 이미 나는 숨통이 트였고 이 세상 빛을 쬐며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한 인간 이고, 내 부모님의 핏줄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기 때문에 굳이 생각해 볼 가치를 못 느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과제라는 미명하에 비로소 내가 누구일까. 라는 사실에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 보려 한다.
- 나는 @@@ @@@씨
19@@년 음력 @@월 @@일 오후 @시 @@분 경. @@병원.
아버지 @@@, 어머니 @@@. 두 분 부모님의 첫 딸로 이 세상에 태어나 2년간 부모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라다가 남동생을 갖게 되었다. 단란한 네 가족과 더불어 친할머니와 함께 올해 초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21년간을 다섯 식구가 북적거리며 한 집에 살았다. 아버지는 4남 1녀 중 장남이시고, 어머니는 2남 3녀 중 장녀이시다. 맏이 부모님들 아래에서 나 역시 맏이로 태어나 자랐다. 부르기 어려운 이름 탓에 집에서는 "@@"라는 애칭을 사용한다.
- 나의 유년시절. 어렸을 때의 기억은 별로 없다. 기억력이 원체 좋지 않기도 하고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을 편식이라 한다면 기억을 가려서 하는 것을 편력이라 해야 할까? 지금도 나는 기억하고 싶은 것, 인상적으로 와 닿았던 것만을 기억하는 편이다. 간단한 예로 3년 동안 같은 학교를 다녔을 동창들 중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꽤나 되는걸 보면 관심 있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습성이 어려서 부터 생겨난 것인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드문드문 하다. 나는 어린 시절의 사진이 꽤나 많다. 첫 아이라 그랬는지 일상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동생에 비해 유난히 많은 편이다. 유년시절 나와 동생의 성장과정을 담은 앨범이 20권 가까이 될 정도로 엄마, 아빠가 사진도 많이 찍어주셨고 나 또한 사진 찍는 것을 즐겼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많이 없지만 사진들 속에 담겨진 나를 볼 때면 어린 영의는 웃음 가득한 장난꾸러기의 얼굴을 하고 있다. 넘치도록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표정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아기 영의는 남자 같았다고 한다. 같은 동네에 살던 남자 아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는데 얼핏 보면 나는 그 속에 너무나 잘 어우러지는 남자 아기 같더라. 이따금씩 이모는 "어릴 때 영아는 참 예뻤는데"라고 하시는데 나는 믿을 수 없다. 어린 시절 동생과 투닥거리며 동네 친구, 오빠, 동생들과 뛰어놀며 자랐다. 우리 동네에는 유난히 남자들이 많아서 언니들과 놀았던 기억이 없다. 그래서 어린 시절 오빠들과 축구도 하고, 자전거 타고, 뛰어놀며 논 기억이 대부분이다. 유치원에 다니기 전까지는 어떻게 놀았는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비로소 여자 친구들과 어울려 놀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왈가닥에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는 철없는 여자아이였다. 남자 짝꿍과는 곧잘 티격태격 싸우고 꼬집기 대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어느 누구에게도 기에서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중학교 시절은 어린 시절의 왈가닥이 빠졌다. 천상여자에 낯도 많이 가리고 친하지 않은 남자친구들과는 얘기도 하지 않을 정도로 낯가림이 심한 아이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사를 단 한 번도 가지 않았기에 한 지역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걸어서 15분, 멀어봐야 버스타고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 그래서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곧 지금의 친구들이다. 여기에는 단지 지역적인 것만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것에는 나의 깊은 인간과계가 한 몫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나는 공부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공부도 소홀히 하진 않았다. 중학교 졸업할 땐 전교2등의 자리를 꿰차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친구들과 정을 나누고 오랜 시간 정말 많은 양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나의 정서상태가 지금과 같은 안정권에 비교적 일찍 들 수 있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 감수성이 예민할 사춘기 시절을 나는 친구들과 큰 탈 없이 사이좋게 지냄으로써 반항기 한번 없이 수월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때부터 대화의 소중함을 배운 것이다. 지금도 가끔씩 생각이 난다. 아무것도 무서울 것 없고 모든 것이 밝게만 보였던 그 시절의 나 이영의가.
- 나는 A형 이다. 우리 가족 모두 A형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A형 집안이랄까? 하지만 처음 나를 본 사람들이나 혈액형을 알기 전까지 함께 지내던 사람들은 나에게 O형이나 B형이 아니냐고들 자주 묻는다. 단순한 네 가지 부류로 인간을 구분하는 혈액형에 치우쳐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게는 상황에 따라 여러 모습의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 나는 차분하면서도 다혈질이다. 일 처리를 하거나 난관에 부딪혔을 때 하나하나 짚어가며 차분하고 꼼꼼하게 해결해내는 편이다. 하지만 성질이 급해 다혈질이기도 하다. 불과 물을 함께 가진 스타일이랄까?
- 나는 계획적이고 즉흥적이다. 금전적인 면에서나 생활운영 측면에서나 비교적 계획은 잘 세우는 편이지만 계획대로 움직이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일 때가 더 많다. 나의 생활 모토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매 순간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하는 편이다. 그래서 일상의 탈출도 곧잘 일삼는 편이다. 계획적인 면보다는 즉흥적인 면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 나는 긍정의 왕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낙관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좋은게 좋은 것이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좋게좋게 생각해야 잘 풀릴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나이기에 웬만한 상황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다. 오랜 시간 노력해 온 덕분에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태도가 비교적 굳게 내게 정립되어 있다. 나는 나의 이런 면을 가장 사랑한다. 하지만 좋게 말하면 긍정이지만 다르게 보면 자기 정당화에 능한 것이다. 무조건 내가 잘한 것이고 내 선택이 옳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동시에 이 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한 일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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