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감시와 처벌
먼저 리포트로 인해 감시와 처벌을 읽기는 했지만 내가 소화 하기는 너무 어려운 내용이었음을 실토해야겠다. 저자인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라는 소재는 좋았지만 그에 따른 이야기 전개 방식과 전문용어, 독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자 하는 어휘의 쓰임 등은 너무 어렵지 않았나 생각한다. 문장을 읽고 또 읽고 그러나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떤 문장들은 그냥 추상명사들만 나열되어 있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유추해가며 읽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미셸 푸코는 현대 철학자 중 미셸 푸코만큼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 이도 드물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사르트르의 후계자, 니체의 후계자인 동시에 탈근대 담론의 대표적 주자, 고전 시대에 관한 주석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청중을 휘어잡은 강단 철학자로써 푸코는 현대 철학의 초상이라 할만하다. 철학자라고는 하지만 푸코는 일상적 관심과 동떨어진 형이상학에 몰두하는 전통적 철학자가 아니었다. 그의 책 중에는 유일하게 만이 인식론을 다루고 있을 뿐 는 광기와 미친 사람들을, 은 대학 부속병원을, 은 형벌 제도와 학교, 공장, 군대, 병원, 감옥 등의 건물 형태와 규율을 다루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를 강하게 흡인하는 재미있는 주제들이다. 감옥에서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우리 모두가 흔히 겪는 학교, 병원, 군대에서의 비합리적이고 억울한 경험들이야말로 푸코의 매력의 근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별로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이 주제들을 관통하는 중심 개념은 권력이다. 이것 또한 개인의 권리 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현대 세계에서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큰 관심사이다.
감시와 처벌〈감옥의 역사〉에서는 먼저 각 시대별 나라의 형벌 제도를 보여주고 그 변화과정과 감옥을 예로든 감시를 보여주고 있다. 권력에 따른 감시와 형벌 제도는 불가분의 관계로 나타나고 그 시대의 권력 속에서 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감시하고 개인이 어떻게 권력에 대항하고 수용되어 갔는지를 보여준다.
첫 페이지에서 다미엥이라는 루이 15세 암살 실패 범의 판결 내용과 처벌에 관한 과정을 보여준다. 도대체 인간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고 지금의 사람들은 이야기 할 테지만 그 시절에는 가능한 일이었다. 저자는 첫 면에 가혹한 형벌을 얘기함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자신의 견해에 힘을 실으려 하고 있는 듯 하다. 뒤이어 저자는 시대 별로 형벌에 관해 이야기함으로 형벌이 생기게 되었던 이유와 현재 형벌이 없어지게 된 이유를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중세시대의 초기 범죄에 대한 처벌은 주로 신체형이 대부분 이었다. 절도나 강간 그리고 살인 등의 범죄에 따라 각기 다른 신체형을 가하였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점은 광장과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볼 수 있는 공개 신체형을 행하였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신체형을 받는 사람의 고통을 전달함으로써 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국가 권력의 상징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그 시대의 범죄는 절대군주의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으며 공개적으로 처형되는 것은 군주의 절대권력을 확인시키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왕권의 권위를 유지하는 사회적 통제의 수단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면서 처벌의 형태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철학자와 법학자 등의 많은 학자들이 다른 방법으로 처벌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흉악한 살인마라고 해도 그를 처벌할 때는 인간본성을 존중해야 함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처참한 구경거리로서의 공개 처형제도는 사라지게 되었다. 잔인한 처형제도는 비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권력의 유지수단에도 불필요하다는 것을 통치자들은 인식하게 되었으며 범죄의 저지에도 그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으로
다양한 범죄목록에 대한 각기 다른 처벌이 고안되었고 범죄자의 처벌은 단순히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참회와 교화를 통한 새 인간을 만드는 수단이 되었다. 과거의 형벌제도가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많은 장점들을 유지하며 진보하였지만 오늘날의 형벌제도는 사실 옛날보다 더 치밀하게 권력수호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옛 중세시대의 처벌이 지금의 우리들이 생각하기에는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이지만 이것은 보는 사람의 시각의 차이일 뿐이다. 그 단적인 예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저술했던 벤담이 구상했다는 원형감옥이 있다. 원형감옥의 중앙에는 감시탑이 있어 죄수들의 감시가 용이하였고 감옥의 주변에는 여러 개의 작은 감방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중앙의 감시탑에는 감시자 한 명이 배치되었으며 독방 안에는 광인이나 병자, 죄수, 노동자, 학생 등 누구든지 한 사람씩만 감금한다. 중요한 것은 빛과 시선의 비대칭성이다. 중앙의 감시자는 독방을 볼 수 있지만, 독방에 감금된 자는 결코 감시자를 볼 수 없다. 감금된 자는 빛에 노출되지만 감시자는 어둠 속에 숨어 있어, 감시탑에 있는 감시자는 격리 수용된 죄수들의 행동들을 자세히 볼 수가 있으나 죄수들은 중앙 감시탑의 감시자를 볼 수 없다. 따라서 죄수들은 감시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자신의 생활에 항상 충실 할 수밖에 없었다. 일정 집단을 통제하는 이러한 감시의 원리는 병원(정신 병원 포함)이나 학교,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환자들은 서로의 병에 따라서 격리되고, 군인들은 상부의 통제와 명령에 의해 생활하며, 학생들은 갇힌 교실 안에서 선생님의 가르치는 방식에 따라 공부를 해야 한다.
지금 나의 신분이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에 대해 더 자세히 예를 들면 학교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배우고 공부하는 장소가 아닌 하나의 감시체계라고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저자는 책에서 ‘학교는 권력의 특징을 전수해 가는 하나의 기관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그러한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 것이 시험이다. 시험을 통해서 적응아와 부적응아를 구별하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교육시키며 결국 그 시대에 맞는 권력자들을 배양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사회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들이 자세히 생각해보면 얼마나 우리사회와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들은 어떤 진리나 창조자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근대 라는 시대의 변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시대 왕의 권력이 범죄자들에게 가혹한 신체형을 가함으로써 시민들에게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유지되었다면 근대이후 지금의 권력유지 방법은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감시로써 대중 스스로 자기규율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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