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홉스봄 그는 어떤 사람인일까
홉스봄은 격동의 세기를 겪은 몇 안 되는 실존하는 역사학자다. 자신의 눈으로 히틀러 정권과 독일의 몰락을 지켜보고, 소련의 공산주의 부흥과 소련 붕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경험하고 911테러를 체험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공산주의에 빠져 세계를 구하겠다는 열망을 품고 아직까지 자신은 공산주의자 라고 말할 정도로 곧은 의지와 신념을 지닌 사람이다. 항상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물지 않는 유목민적 삶, 세계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실을 겪고 자신의 역사로 만들어 버린 역사의 산 증인이며 다양한 언어를 구사해 식견이 넓었고 항상 소속감을 느낄 수 없는 이방인으로 대접받으며 살아온 객관적인 시각을 소유한 학자가 바로 에릭 홉스봄이다. 우리에겐 더 없이 소중한 산 지식인 에릭 홉스봄.
홉스봄은 1917년 이집트에서 유대계 영국인 아버지와 유대계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삼촌 부부가 부모 역할을 해 주셨지만 홉스봄은 사실상 가장 노릇을 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홉스봄 그는 유대인이 가장 살기 힘들었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 때에 한창 젊음을 누리게 된다. 베를린 학창 시절에 히틀러의 태동을 지켜보며 마르크스에 빠져 온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그 시대 상황과 홉스봄이 머물렀던 장소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홉스봄은 1936년 케임브리지 시절 공산당에 가입 1991년 해체되기 얼마 전까지 남아있었던 후회하지 않는 공산주의자다.
나치 시대에 유태인 치고 그나마 평안한 삶을 살았던 운이 좋은 사람이었고, 공산당이란 틀 안에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며 많이 배우고, 책에 빠져 지내는 열정적인 유태인이었다. 그렇다고 비 공산당원을 증오하거나 싫어했던것이 아닌, 주로 관찰자가 되어 바라보곤 했다. 공산당이 된 후 많은 일들을 겪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달리했다. 자본주의를 택한 나라들과 공산주의를 택한 소련 및 공산주의 국가들의 부흥과 몰락을 보며 스스로 많은것을 배우고 느끼며 책도 저술하고 강연도하며, 세계에서 인정받는 학자에 까지 이른다.
홉스봄은 프랑스와 미국에 색다른 감정을 느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문화를 가진것만 같은 프랑스와 째즈라는 창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를 엿보게 된다. 공산주의자로 미국에 출입은 어려웠지만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감정은 나쁘지 않았다. 기술과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세계 제일이라며 세계를 호령해 온 미국. 무시할 수 없는 국가인것은 사실이다.
홉스봄은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정치 경험을 하고, 강연도 했다. 때때로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기는 했지만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경력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당당하게 세계에서 유명한 마르크스 학자가 되었다.
그는 세상을 단지 관찰과 분석의 대상으로만 바라본 것은 아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현장에서 활동하였다. 마르크스 시각으로 세상을 풀이하고 싶어했고, 뜨거운 열정을 가졌었다. 그 열정을 통해 실제로도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홉스봄은 자신들의 운동은 온 인류를 위한것이었지 특수한 집단만을 위한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의 이상은 개인의 이기심이나 집단의 이기심을 뛰어넘었다.
홉스봄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소속감을 잊고 떠돌아 다녔다.
타지에서 온 이방인처럼 이집트에서 태어나 중유럽 사람들 속에서는 잉글랜드 사람이었고, 영국에서는 유럽에서 온 이민자였으며, 어디를 가도 유대인이었고 특히 이스라엘에서도 다른곳에서 유대인이 받았을 법한 왕따를 당한다. 전문가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거기에 반대하는 길을 걸었고, 여러 언어에 능한 코스모폴리탄이었고, 못 배운 사람들에게 정치적 관심과 학문적 관심을 쏟아 부었던 지식인이었다. 심지어 접해본 나라들안에서 정치적으로 소수파에 머물러 있던 공산주의자들 안에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별종 취급을 받았다. 그로인해 역사가에게는 각별한 자산이 되었다. 그러한 자산을 우리는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며 배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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