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에서 만난 희망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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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에서 만난 희망의 아이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의 줄거리
몇 주 전, 주변 초등학교로 일주일간 참관실습을 다녀왔다. 자유참관을 들어갔던 1학년 어느 반에 폭력적이고 입이 거친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수업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가 자유롭게 교실을 돌아다니고 심지어 반 친구와 주먹다짐을 하고 책걸상을 발로 차는 모습을 40분 동안 여러 번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나는 수업시간에 이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가 손을 물리기도 했다. 수업 후에 담임 선생님께 그 아이는 아버지가 없는데다가 어머니까지도 아이를 방치하는 바람에 아이의 행동이 더욱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다. 데쓰조도 말하자면 이런 아이이다. 부모님이 없는데다 할아버지는 생계를 꾸리느라 바빠서 데쓰조를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 아이가 파리에게 애정을 쏟고 정성을 쏟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론 데쓰조는 앞서 말한 아이처럼 적극적으로 공격적인 아이는 아니다. 단지 자신이 아끼는 것, 즉 자신의 영역을 공격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아이이다. 책 본문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데쓰조가 개구리를 밟아 죽인 이유가 이제야 밝혀졌다. 파리는 데쓰조의 애완동물이었다. 그걸 모르고 후미지가 파리를 개구리한테 줘 버린 것이다. 개구리는 그걸 먹었고 화가 난 데쓰조는 개구리한테 복수를 했다.
데쓰조는 자신의 영역 아닌 일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누가 뭐라 하든 본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자신이 아끼고 좋아하는 것을 빼앗긴다면 데쓰조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던 간에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데쓰조의 담임선생님인 ‘고다니’ 선생님은 데쓰조가 잔인하게 개구리를 죽인 사건을 접하고 나서 데쓰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 의식은 이 책 속의 많은 사람들의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데쓰조는 쓸 줄도, 읽을 줄도, 말할 줄도 모른다. ‘응’ 이라는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해 ‘으..’ 라고 할 뿐이다. 이는 아마도 가정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함에서 초래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데쓰조에게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것들이 데쓰조가 사랑하는 파리와 소통하는데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데쓰조에게 왜 파리가 중요한 애정의 대상이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 데쓰조의 환경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데쓰조는 부모님이 없다. 게다가 할아버지께서는 바쁘시다. 그리고 데쓰조는 사회적으로 빈곤한 계층의 아이이다. 즉 소외계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아이에게는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실제로 내가 학교 현장에 가보니 눈에 들어오는 예쁜 아이들은 하나같이 차림새가 깨끗해 보이고 붙임성이 좋은 아이들이었다. 지저분한 차림으로 교실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상대적으로 시선을 덜 두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데쓰조는 학교에서도 관심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데쓰조가 애착 관계를 형성하여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사는 곳이 쓰레기 처리장이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파리를 애착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파리의 성충이나 번데기, 구더기를 잡아다 병 안에 넣고 기르면 이들은 날아가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옆에 머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데쓰조의 짧은 생애를 지탱하는 것이었다. 고다니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고다니 선생님은 데쓰조가 파리를 기르는 것을 안 처음에 큰 충격을 받고 데쓰조에게 파리를 버리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데쓰조의 할아버지인 바쿠 할아버지로부터 데쓰조가 파리를 키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듣고 데쓰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음은 바쿠 할아버지가 고다니 선생님에게 말한 내용이다.
“데쓰조가 파리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엄청 화를 냈어요. 여간해서 때린 적이 없었는데도 그 때는 마구 때리고 화를 냈지요. 병도 깨부숴 버렸고요. 그런데 꾸중을 들어도 얘는 파리를 기르지 뭡니까. 그러다 보니 화도 못 내겠고 때리지도 못하겠더군요. 이 녀석은 어미도 없고 아비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도 귀여워해 주는 사람이 없죠. …… 고다니 선생님, 파리를 기른다고 해서 데쓰조가 나쁜 아이는 아닙니다. 산으로 데려가면 데쓰조는 곤충을 기를 겁니다. 강으로 데려가면 물고기를 기르겠지요. 하지만 나는 아무 데도 못 데려갑니다. 이 녀석은 쓰레기가 모이는 여기밖에 모르고, 여기는 구더기나 하루살이, 그리고 기껏해야 파리밖에 없는 뎁니다.”
이만큼 데쓰조는 필사적이었다. 일반적인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이 부모님의 사랑을 당연하게 듬뿍 받으며 자신의 지성을 계발하는데 온 노력을 쏟아 붓는 동안 데쓰조는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얻지 못해 스스로 구해야 했다. 파리에 대한 애착이 바로 데쓰조를 지탱해준 힘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당연하게 얻어온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지 못하고 당연하게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결핍에 대해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보다 그 사람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비난하고 외면하는데 우리의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히메마쓰 초등학교 대부분의 선생님이 처리장 아이들을 희망이 없고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만 주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음은 본문에 나오는 ‘무라노’ 라는 교사의 말이다
고지는 처리장 아이였다.
“며칠 전, 고지한테 급식 당번을 시키느냐 마느냐를 놓고 3학년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지는 도무지 청결과는 거리가 먼 아이입니다. 식사 전에도 손을 씻지 않아요. 소독액에 손을 담그지도 않고요. 목욕을 싫어해서 손발에 항상 때가 끼어 있는 형편이죠. 여러모로 지도해 봤지만 고쳐지지 않아요. 가정에도 연락해서 협조를 구했지만 감감 무소식으로, 통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는 사이에 아이들 쪽에서 비난의 소리가 높아져서 고지가 급식 당번을 하는 동안에는 급식을 먹지 않겠다는 겁니다.”
다음은 고다니 선생님과 고지의 대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