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이라부 관극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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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닥터 이라부 관극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닥터 이라부
닥터 이라부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저명한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를 희곡으로 각색하여 만들어진 연극이다. 이라부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다양한 정신적 문제를 안고 있는 환자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치료하는 괴짜 정신과 의사이다. 책이 출판될 당시만 해도 꽤 오랫동안이나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모셔져 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내겐 그저 잘 팔리는 소설들 중 하나였기에 구태여 사서 읽어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동했던 책은 아니었다. 책을 읽지 않은 게 결코 자랑은 못 되지만 이 연극을 보고 나서 새삼 읽지 않길 잘 했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책을 안 봐 재밌게 관람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책을 보고 연극을 보니 뭐하나 특별날 게 없더라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뭣 모르는 아마추어의 시각이긴 하지만, 극의 짜임새나 무대 장치 등에 있어서 닥터 이라부는 적어도 흥미 면에선 꽤나 성공적인 연극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연극은 자칭 버라이어티 메디컬 쇼에 걸맞은 유쾌한 쑈로 시작된다. 배우들은 모두 무대로 나와 음악에 맞춰 생기발랄하게 춤을 추기도 하고, 무대와 객석사이에 보이지 않는 제 4의 벽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지 서슴없이 관객들에게 말을 걸며 호응을 유도한다.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한 이러한 장치는 극의 중간중간에도 수시로 등장하며, 극의 몰입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전개에 녹아든다. 그러나 다소 불편했던 점은 관객과의 소통이 너무 빈번하다보니 과장된 관객의 반응이나 돌발적인 상황 등의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모호하고 개방적일수록 관객 역시 연극적 관습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돌출된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이 관객의 참여 유도를 넘어 연극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관람했던 날도 지나치게 큰소리로 감탄하거나 뒷좌석까지 들릴 정도로 옆사람과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어떤 관객은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라는 배우의 요청에도 쑥쓰러운 듯 반응을 보이지 않아 배우가 간곡히 부탁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연극도 좋지만 그것이 연극 자체를 가볍게 만들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닥터 이라부는 총 5명의 배우가 열연을 펼친다. 소소하게 등장하는 이들까지 합하면 못해도 10명 이상의 등장인물이 나오는 것 같지만, 소극장 연극의 배고픈 여건상 이들을 모두 캐스팅하는 것은 무리가 있고, 한 배우가 여러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또한 소극장 연극만의 유쾌한 매력이기에 시침떼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움이 오히려 즐거움을 안긴다. 연극의 타이틀 롤로서 푸근한 몸매에 코미디언 심형래와 똑 닮은 외모로, 원작을 읽었던 이들조차 그 절묘한 배역 선정에 무릎을 치게 만드는 닥터 이라부는 말투며 동작이며 마치 심형래가 우리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가 극 중에서 정신질환 환자들을 치료하는 방식은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자고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어디까지나 연극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다. 현실에서 이라부 같은 의사가 있다고 상상해보라. 십중팔구 돌팔이 취급이나 받으며 병원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약이나 거창한 치료 요법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깨닫도록 돕는다는 이라부만의 독창적인 치료 방식은 하나쯤 남들에게 말 못할 정신적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처방약이다. 선단 공포증에 걸린 조폭 행동대장, 자기과잉에 빠진 연예인 지망생, 표출되지 못한 분노가 지속 발기증으로 이어진 샐러리맨 등은 모두 각박하고 물질주의적이며 늘 바쁘게 살 것을 재촉하는 현대 사회 속의 우리 모습인 셈이다. 특히 연예인 지망생과 샐러리맨은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로서 한국 사회의 실정에 맞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들이다. 특히 지속 발기증이라는 생소한(?) 증상이 표출되지 못하고 억눌린 분노를 남자의 성기가 대신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는 발상은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연극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파티션을 일종의 벽으로 활용하여 이를 옮기면서 수십개의 무대공간을 창출해내는 무대 장치 기술이었다. 공간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연극 무대의 한계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배우들은 공간의 이동이 있을 때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파티션을 짜맞춰 공간을 연출했고, 좁은 소극장에서 그 정도의 무대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 무대장치들이 등장인물들의 극적 갈등을 이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주로 관객의 흥미를 유도하고 재미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대단히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닥터 이라부에서는 타인과의 가치관 충돌로 갈등을 빚고 이것이 파국으로 치달아 절정으로 향하는 치열한 모습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여러 주인공들의 정신적 문제로 인한 내적 갈등과 이라부의 치료가 번갈아 보여지며 그 안에서 웃음포인트를 던지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신선한 소재와 독창적인 무대장치는 인상적이었고 시종일관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했지만, 정작 연극의 근본인 운동의 총체성과 끊임없는 갈등을 표현하는 데 있어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연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