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존큐 감상문]
‘존큐’라는 영화를 전에 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 정책론 강의시간을 통해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 존큐는 미국의 전형적인 하층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철강회사 노동자인 존큐는 회사의 경영난으로 정규직에서 주당 20시간의 근로만을 보장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며, 부인은 슈퍼마켓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아들이 야구경기를 하는 도중 쓰러지면서 사고가 일어난다.
아들은 심각한 심장병으로 이미 간단한 수술로 고칠 수가 없고 심장 이식 수술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는 수술비로 거액이 돈을 마련해야 했다.
또 하나의 불행한 일은 직장에서 들어놓은 보험에서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자신의 의료 보험이 민간 의료 보험 프로그램으로 바뀌어 보장을 받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믿었던 보험회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존은 여러 가지 방법을 해봤지만 돈 없이 수술이 불가능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자신의 아들을 보고도 수술비만 따지는 병원의 태도에 존은 자신의 의지를 주장하는데 사용한 방법은 인질극이었다.
그렇게 인질극을 하고 있는 동안에 아들의 병은 더 나빠졌고, 병원에서는 겨우 이름만을 대기자 명단에 올려준다. 아들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게 된 존큐는 자신의 심장을 아들에게 이식해 달라고 말한다.
그리나 정말 다행이도 아들의 조직이 일치하는 심장을 구하게 되어, 수술을 받은 아들은 회복하게 된다. 얼마 후 존큐는 법정에서 인질극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으며 영화는 감동을 남기며 결말을 내린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슬픔과 감동을 주면서 사회복지의 민간의료보험 제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미국의 사회복지정책은 미국만의 사상에 의해 발전시키면서, 복지정책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제한을 두면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미국에서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