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큐 영화 감상문
존큐는 평온했던 한 가정에서 어느 날 아들 마이크가 야구 게임 도중 갑작스럽게 심장병으로 쓰러지게 된다. 병원에서는 당장 심장 이식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하면서도 비싼 수술비의 일부분을 미리 내지 않으면 심장 수술 대기자 명단에조차 올릴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마이크의 아버지인 존 큐는 그 동안 들어놓았던 보험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보고자 하지만 그 동안 꾸준히 내왔던 보험금의 금액이 적어 이렇게 큰돈은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얘기만 할 뿐이었다. 이에 존 큐는 비조리한 사회에 통탄하며 이에 맞서기로 결심하게 되고 아들이 수술할 병원 응급실을 점령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수술 대기자 명단에 올려줄 것을 요구하는데,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민간의료보험의 허상과 비인간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본 뒤 가장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미국의 의료보장제도이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을 의무화하고 국가가 보장해주어 전 국민의 형평성에 맞게 의료 서비스를 보장해준다. 반면 미국은 의료서비스를 민간에서 보장한다. 때문에 다수의 공적인 이익보다는 소수의, 사적인 이익을 중요시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소수의 사람들만이, 소위 돈을 많이 벌어 많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존 큐는 그 동안 꾸준히 의료보장제도에 돈을 납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민간에서 보장하는 의료 서비스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복지보다는 자신들의 이윤을 최 우선시하는 미국의 의료산업은 복지가 아닌 사업이었다. 미국 민간의료보험의 경우 내는 보험료에 따라 단계별로 가입자에 대한 진료의 폭과 서비스의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민간의료보험의 등급이 그 사람의 지위나 부를 상징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는 가장 선두적인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후진적인 건강보험제도를 택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이 적게 내어 형평성을 맞추는 것이 아닌 더 많은 혜택을 보장받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내야하니 말이다.
또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비인간성은 바로 관료제적 폐해이다. 목적전치현상이란 말을 우리는 많이 들었다. 또 우리 또한 일상에서 흔히 겪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병원이라는 곳은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곳이기에 이러한 폐해에 더욱 심각성을 느끼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존큐의 아들 마이크는 일분일초 다투는 응급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서류를 작성하고 원무과에 가서 접수를 해야 했고 그러고 나서도 수술을 받을 수가 없었다. 사람의 목숨을 상대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물질적인 부분이 해결되기 전에는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병원 측의 입장은 병을 치료하여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측면보다는 이를 통해 이윤을 취하려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부터도 대부분의 추세가 국가가 보장해주는 복지보다는 민간적인 서비스를 전환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이 현재보다는 미래에 더 많이 팽배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민영화가 된다면 다양한 보험을 선택할 수 있고 다양한 공급이 생기면서 서로 경쟁을 통해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국민 대다수를 위한 정책인지 아니면 돈이 있고 더 좋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부분들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 지면서 편리해지고 간편화 되고 다양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점점 돈이면 다 되는, 돈이면 최우선시 될 수 있는 그런 추세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복지라는 부분은 물질적인 부분이 아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줄 수 있는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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