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팔꿈치 사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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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후감 팔꿈치 사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팔꿈치 사회 -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독일 말에 팔꿈치 사회(Ellenbogengesellschaft)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는 1982년 독일에서 올해의 단어로 뽑혔다. 팔꿈치 사회는 옆 사람을 팔꿈치로 치며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일컫는다. 마라톤 경주에서 서로 앞만 보고 달리는데, 자기 옆에 다른 사람이 따라붙으려고 하면 팔꿈치를 옆으로 확 휘두르며 남의 옆구리를 찌르는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틀림없는 반칙이지만 절묘하게 자기 감정을 숨긴 채 마치 달리기 자세를 크게 하는듯하면서 경쟁자인 옆 사람을 밀쳐낸다면 마치 규칙을 준수하며 달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일등자리를 차지하기는 매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등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런 식으로 팔꿈치 사회에서 절묘한 반칙은 교묘히 세탁되고 정당화 된다. 팔꿈치 사회라는 이 단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경쟁사회를 실감나게 표현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1982년, 독일에서 크게 히트를 친 단어이다. 저 먼 나라의 30년 전 단어는 30년 전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시대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단어가 되었다. 저자인 강수돌 교수는 경쟁 사회의 심연에 자리 잡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파헤쳐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또는 경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우리 시대를 비판한다. 그리고 그 비판에 따르는 대안을 제안한다. 이 책은 저자가 5년전에 내놓은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초판을 보완하고 손보아 내놓은 책이다. 이 책의 중심 주제를 잘 나타내 주는 경쟁의 내면화는 경쟁은 자본이 그 뭄집을 불리기 위해 만들어가는 사회경제적 시스템이 핵심이지만, 이는 동시에 그 시스템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적응하고 동조하는 사람의 문제를 밝힌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내면과 적나라하게 마주하여 우리의 삶을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저자의 대안은 완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문제제기는 정확하다.
이 책의 제목 팔꿈치 사회만큼이나 책의 핵심을 잘 보여주는 익살스러운 그림이 책 표지에 등장한다. 책의 제목 위에 엄지손톱만 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마치 그리스인들이 나체로 달리기 경기를 하고 있는 그림으로 보이는데 손에는 시대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지니스가방이 들려있다. 이것은 승자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을 향해 치열하게 달리는 운동선수의 경쟁 모습과 경쟁사회에서 경쟁자를 제끼고 승리를 향해 달리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일하기 위해 사는게 아니다.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우리의 사회는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한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자랑할 만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일을 하면서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그 대답이 책에서 제시된 것처럼 "그러지 않다"라면, 세계 최장 노동시간은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이 노동으로 인해 얼마나 불행을 겪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지표일 것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일을 할까? 바로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경쟁의 구조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는다면 경쟁에서 도태되고, 그 도태는 곧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우리 내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늦은 밤까지 불을 끄지 못한다. 늦은 밤 남산 위에 올라가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반짝이는 불빛들이 수놓은 야경에 감동을 느낀다. 그래서 남산의 야경은 연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치열한 경쟁으로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고 끊임없이 일하는 우리 사회의 아픔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경쟁사회는 누가 만들었을까?" 원래 경쟁(competition)이란 말의 어원은, 라틴어로 함꼐 추구하는 것이란 뜻이다. 뭔가 바람직하거나 공통적인 것을 위해 더불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의 경쟁은 생존의 경쟁이다. 이 생존 경쟁의 주체는 누구인가? 노동자? 아니다. 권력과 기업, 바로 자본이다. 경쟁은 자본이 효과적으로 몸집이 불리기 위한 방법이다. 생존 경쟁은 자본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수단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쟁은 필연이고 좋은 것이니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자본과 그 대리인들, 대리 조직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원래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는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다. 서로 돕고 나누는 가운데 온갖 역경도 이겨내며 같이 살아온 것이 인류의 생존방식이었다. 경쟁에서 누구도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경쟁은 무한한 경쟁으로 이어지며 무한한 경쟁은 필연적으로 무한한 파괴로 이어진다. 결국 경쟁은 인류 공존이 아닌 공멸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강수돌 교수가 비중있게 다룬 것처럼 경쟁을 부추기는데 크게 일조하는 것은 교육이다.
"학교는 경쟁이 초래하는 비인간적 결과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비인간화를 무릅 쓰고라서도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만 관심을 갖는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초고 수준을 자랑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교육의 열렬한 팬이다.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칭찬하며 미국이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미국 대통령도 칭찬한 교육열을 더욱 더 자랑스럽게 여긴다. 과연 우리의 교육은 그러한가? 오바마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유치원부터 시작해 대학교까지 교육을 받아본다면 그런 말은 다신 꺼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죽임의 교육이다. 아이들을 점수에 주눅 들게 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점수경쟁이라는 감옥에 가둔다. 그리고 대학 입시 시험일은 약 이십 년 가까운 인생을 하루아침에 판결 받는 날이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수능 시험 도중 수능성적에 비관하여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사건들을 접하기도 한다. 또한 학교전설같은 무서운 이야기에서는 전교 1,2등의 살해와 원한의 이야기는 단골 소재일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 입시를 잘 보면 그간 인생은 성공이란 결론이 나고, 잘못 보면 그간 인생은 실패로 낙인찍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