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학회와 재인한국인을 읽고
‘창가학회와 재인한국인’을 읽으면서 재일한국인의 외로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례들을 접하면서 남의 나라 더구나 일본 땅에서 살아가야 했던 그들이 ‘얼마나 외로웠을 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외로움 또한 그들을 창가학회로 이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재일한국인은 고국을 떠나 일본 땅에서 살면서 일본에 속하지도, 한국에 속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재일한국인 1세대가 더욱더 그러 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그 땅의 주인으로서 인정받고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사례에서 보면 국적, 이름, 언어, 한국적 습관, 정체성 등이 그들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살면서 ‘나는 한국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것은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유는 우리가 한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나누는 한국말의 대화, 밥을 먹을 때 반찬을 한 그릇에 담아먹는 것 등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어서 일상생활의 혼란을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재일한국인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혼란이었고, 그들이 해결해야 살 수 있는 문제였다.
누가 나에게 일본말로 된 이름을 부른다면 정말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제일한국인은에게 가족 간에는 한국이름을 사용했을지라도, 그 외에서는 통명으로 불렸다. 1세대이상의 제일 한국인에게 오히려 통명으로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언어의 장벽이다. 1세대는 일본사회에서 말이 안 통하는 것이 문제가 됐다면, 2세대 이상부터는 한국말을 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때문에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각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는 한국인으로 속해 있을 지라도 끊임없이 고민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문제는 재일한국인에게 더 큰 문제로 다가왔으리라고 짐작해본다. 또 다른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차이에 대한 부적응 문제이다. 우선 친척간의 결속의 정도의 차이이다. 현대사회가 점점 진행될수록 우리나라 또한 친척간의 결속이 많이 느슨해졌다. 그렇다하더라도 특히, 제주도의 ‘괸당’문화의 모습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리고 식사문화에서 오는 차이이다. 우리나라는 찌개문화로서 한 그릇을 모든 식구들과 같이 먹는 데 반해 일본은 각자 자기그릇에 덜어먹는 개인주의적 식사문화를 가진다. 개인적인 문화들은 정 많은 한국 사람들을 더욱더 외롭게 했을 것이다.
우리가 제주를 떠나 가까운 부산만을 가더라도 부산사람들이 쓰는 사투리를 들으면 ‘여기가 부산이구나.’하고 머쓱한데, 한국인이 일본 땅에서 알아듣지 못하는 말과 다른 식생활의 환경들을 접하면서 정말 외로웠을 것이다. 고국을 떠난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이렇게라도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한국인으로 일본에 살기 위해 일본에 소속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인 귀화를 해야 했다. 재일동포가 귀화하는 것은 나라를 버리는 것, 나라를 파는 것, 일본인이 되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마치 제주사람이 육지에 가서 살면 ‘육지 것’이 되었다고 섭섭함 또는 배신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일본인으로 귀화하는 것은 이것 보다 더 큰 배신감의 이미지를 나타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들 입장에서는 생활의 편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그것과 겹친 병고의 문제 등 그리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외로움이 그들을 창가학회로 이끌었다. 한국인인 자신이 일본종교를 믿는 다는 것은 최후의 보루였다. 하지만 생활은 점점 궁핍해가는 절박한 상황들, 상황이 좋아진 주변사람들의 절복으로 창가학회에 가입한다. 내가 생각할 때 창가학회를 믿고 나서 병이 좋아졌다든가 경제적인 여건이 나아졌다든지 하는 상황들은 긍정의 힘이 아닌가 한다.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을 계속적으로 올리는 제목을 입 밖으로 꺼내어서 기도하고,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다보면 행동으로 변화 되지 않을까? 이러한 사례들은 창가학회가 아니더라도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상황을 이겨낸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건, 그들의 절박한 상황들은 그들을 창가학회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했다. 이러한 긍정의 힘은 재일제주인이 제주인 에게도 절복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제주인들은 재일제주인들의 직접적인 경험담을 듣고 창가학회에 가입한다. 어려운 상황들 속에서 살고 있던 제주인들은 그들에게 강렬한 자극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회나 절처럼 돈을 내는 일도 없었고, 형식적으로도 다른 종교와 같이 부담스럽지 않아서 창가학회에 가입하기 더 쉬웠을 듯하다. 더구나 그들의 가난과 시련들 때문에 상황이 절박했다. 의지할 곳이 필요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창가학회 좌담회에 참석했다. 어디에도 창가학회가 불교라는 모습은 없었다. 종교적인 분위기 즉, 엄숙하고 조심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활기차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에 이유는 내가 생각하건데, 수직적 서열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승려가 없는 창가학회는 신도가 조직을 이룬다. 신도들은 직책을 가진다하더라도 연륜에 바탕을 둔 봉사직이다. 때문에 이러한 수평적 조직은 신도들끼리 허심 탄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좋은 분위기의 좌담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죄담회에서 대부분 이케다회장의 말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첫 느낌은 불교라기보다는 이케다회장을 숭배하는 모임처럼 보였다. 죄담회의 시작과 끝에만 ‘남묘호렌게쿄’를 삼창 한다. 그것 이외의 종교적인 모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신도들 간의 화목한 시간인 듯 보였다. 특히 새로운 건 죄담회에 한 일정으로 레크리에이션이 있다는 것이다. 연극을 레크리에이션으로 했는데, 창가학회가 어떤 종교이며,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어떻게 절복을 행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었다. 또 하나 새로운 것이라면, 사람들이 모이면 식사를 하거나 간단한 다과를 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모습이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헌금이나 시주가 없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없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한번 하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매 예배시간마다 헌금을 하고, 또 그 이상하기도 한다. 절에서도 노골적으로 시주를 많이 하라고 하고 절을 다니는 신도들 역시 시주를 많이 하면 공덕이 쌓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창가학회에서는 재무를 11월에 한번만 한다. 그 금액은 상관이 없으며, 형편이 안 되면 못하는 사람도 꾀 있는 듯 했다. 이러한 모습은 경제적인 상황에 힘들어하는 민심들을 자극 할만하다.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십일조를 내는 것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는 것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또 창가학회에 쉽게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성경과 불법과 달리 쉬운 언어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종교를 믿는데 부담을 덜 가지게 할 것이라 생각된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