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읽고 - 미시사관점으로 바라보기
-미시사관점으로 바라보기-
나는 평소 영화나 책 등의 매체들과 수업에 배우는 것들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습득하였다. 그 당시 시대의 사람들이 계층이 어떻게 나뉘어져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수박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었다. 이번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보고 마르탱 게르라는 어찌 보면 평범한 농민인 그의 이야기를 통하여 프랑스 ‘앙시앵레짐’ 시대 당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원작을 밑바탕으로 하는 영화들은 책을 바탕으로 제작이 되는데,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영화로 먼저 제작이 된 후 책으로 쓰여진 특이한 케이스이다. 마르탱 게르의 사건을 더욱 더 파헤치기 위하여 쓰여진 미시사의 하나라고 볼 수가 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재구성 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소설보다 더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 등을 엿보기에 충분한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로 마르탱 게르와 베르트랑트의 결혼하는 모습에서 당시 시대의 분위기를 볼 수가 있었다. 마르탱의 집안에서는 실생활에 필요한 침대와 베개, 옷 등을 준비하였고 베르트랑트의 집안에서는 현금과 토지를 준비하게 된다. 당시 앙시앵레짐시대의 결혼은 파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며 물질적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는 계약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경제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점은 마르탱의 장모가 재혼을 한 것으로도 알 수가 있었다.
결혼식을 하는 행위에도 그들의 생활과 문화가 담겨져 있었다. 당시 16세기의 프랑스는 가족은 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혔으며 사회 전체의 재생산 문제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결혼하는 마르탱과 베르트랑트를 위하여 다산酒를 준비하였으며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는데, 이것은 신랑과 신부에게 아이가 빨리 생기기를 바라는 하나의 풍습이라고 한다. 하지만 마르탱과 베르트랑트의 아이가 생기지 않자 마르탱은 성불구자 취급을 받으며 온 마을의 놀림감이 되었으며 악마가 씌었다고 생각하여 채찍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매를 맞는 등의 민간신앙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아멘’을 외치는 신부가 채찍을 때려가며 이 부부를 치료하는 모습에서 기독교 신앙과 섞인 당시 주술적인 신앙을 엿볼 수가 있었다.
또한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보고나서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에 대하여 엄격한 것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바로 마르탱의 아버지가 아들이 곡식 한 자루를 가져갔다고 크게 혼내며 ‘나의 재산에는 손댈 수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바스크사람들에게 절도는 타락하고 저속한 마음의 소행이기 때문에 그것이 집안에서 일어날 경우 용서를 받을 수가 없었다. 마르탱은 스페인으로 넘어갔고 마르탱의 부모는 아들에 대한 소식은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아버지는 마르탱을 용서하였다는 말과 함께 토지에 대한 상속자로 지명하는 유언을 남기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재산은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걸 느꼈다.
보면서 또한 느낀 것은 그 시대의 프랑스여성은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라는 것이다. 당시 16세기의 프랑스는 여성들의 정조가 중시되고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대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베르트랑트를 통하여 잘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관습은 남편이 사라져도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아내는 자유롭게 재혼할 수 없었다. 베르트랑트 역시 정조를 지키며 정숙하게 살았으며 실제로 베르트랑트가 판사에게 정조를 지키면서 살았다는 대답에 강조하며 한 번 더 대답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또한 가짜 마르탱은 가족들에게 외국 이야기를 하면서 여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하여 말을 하는데, 피에르는 여자가 지배하면 그 땐 세상이 끝나는 날이라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것을 보며 이 시기 여성들은 주체적이라기보다는 공동체 안에서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다라고 생각하였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