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행복, 그리고 대인간 커뮤니케이션
1. 나는 행복한가?
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행복이라고 느낀 것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었던 적이 없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주시는 통닭 한 마리로 네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닭을 나눠먹는, 닭다리를 두고 누나와 벌였던 세계전쟁, 이런 것은 한 때의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이지 지속적인 행복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첫 수업에서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진정한 나’에 대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지를 물어봤다. 지금 우리가 스스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나’가 아니라 ‘경험의 덩어리로서 나’가 아니었냐는 물음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우리에게는 ‘몸, 마음, 나’ 이렇게 세 개의 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몸의 시각으로 보는 나는 보이는 대로 보는 평범한 생각을 말하고, 마음의 시각은 반드시 보아야할 것을 보는 다른 생각을 말하고, 나의 시각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바른 생각을 말한다. 즉, 다시 말해서 나는 행복한가에 대한 물음을 가지기 전에 내가 알고 있는 ‘나’가 ‘진정한 나’가 맞는지 아니라면, ‘진정한 나’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깨달을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에도 차원이 있다. 점은 0차원이다. 정지해 있고, 생명이 없다. 따라서 무기물(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선은 1차원이다. 단선운동을 한다. 신진대사만 한다. 단순 광합성만을 하는 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면은 2차원이다. 옆으로 뛸 수 있다. 자극에 반응하는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입방체는 3차원이다. 상승작용을 할 수 있다. 이기는 걸 좋아하고 앞서 가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3차원에 살면서 남보다 돈이 많고, 남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고, 남보다 더 좋은 집에 산다고 해서 정말로 행복할까? 교수님은 ‘행복 지수’를 언급하면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행복이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아님을 지적한다. ‘행복지수’란 불행지수가 낮다는 것이다. 즉 첫째, 인간은 철저하게 무엇인가를 욕망하고, 둘째, 인간은 그 욕망이 충족되는 것에 비례해서 행복감이 생긴다. 여기서 행복감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이지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아니다. 행복감은 행복의 짝퉁이다.
따라서 ‘나는 행복한가?’에 대한 물음에서 나는 이 질문의 본질조차 아직 파악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진정한 나’를 찾아야하고, ‘행복’이란 무엇인가부터 알아야 한다.
2. 대인간 커뮤니케이션
인간은 관계의 존재이다. 관계에는 우리가 지향하는 만남이라는 관계가 있고, 소유, 중독, 집착, 공존, 우정 등의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관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교수님은 어머니가 뱃속에서 임신한 상태를 말씀하신다. 태아가 자궁에 있을 때는 100%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는 상태이다. 하지만 이러한 완벽한 관계는 아이가 9개월 뒤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사라진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러한 완벽한 충족감을 원한다. 하지만 실제에서 이런 관계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진정한 관계란 무엇인가 하면, ‘내 몸에 있는 나, 네 몸 안에 있는 너’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연인사이 든, 부모 자식관계든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사랑 한다’의 대부분엔 속에 너를 ‘소유하고 싶다’는 뜻이 강하게 내포되어있다. 만약 대상이 나를 완벽하게 만족시켜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이는 사랑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관계의 정의 안에서 만남은 무엇인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만남인가?, 함께 즐거워 하는 것이 만남인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만남인가? 결혼하는 것이 만남인가? 만남의 본질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전에 원하는 주체인 “나”를 먼저 알아야한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즉 다시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3. 진정한 행복.....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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