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존큐 소감문
영화 ‘존큐’를 감상하기에 앞서 감독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았다. ‘존큐’는 닉 카사베츠 감독의 세 번째 영화이다.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아버지 존 카사베츠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사회비판적인 주제의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감독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한계, 의료계의 비리 실상들과 허술한 사회보장제도 등 이러한 메시지들을 영화 속에 숨겨놓았다고 하는데 염두에 두어두고 감상을 하였다.
도로를 달리는 두 개의 자동차. 뒤에 있던 차가 앞에 있는 차를 추월하기위해서 나란히 달리다가 마주오던 차량과의 충돌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 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한 가정의 가장인 존은 자신의 자동차가 은행에 차압되는 상황이 되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정에다가 그나마 다니던 직장에서도 일하는 시간이 줄었다. 하지만 그와 그의 아내는 아들 마이크로 인해 그나마 웃고 희망을 가진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이크는 친구들과 함께 한 야구 게임 중에서 타자를 맡게 되었는데 공을 시원하게 쳐낸 후 전력을 다해 2루로 뛰어가다가 갑작스런 가슴통증과 호흡곤란증세로 쓰러져 발작을 일으키고 만다.
급히 응급차를 불러서 들것에 실려 병원에 도착하게 된 마이크와 그의 가족. 그들은 심장전문박사를 만나 설명을 듣고 있는 중에 마이크가 심부전증이라 심장이식수술을 받아야하거나 진통제를 맞아 그나마 편안하게 떠날 수 있도록 돕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를 듣게 된다. 현실을 직시하고 떠나보낼 준비를 하라는 말을 하는 박사의 말에 실의에 빠진 존과 그의 아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심장이식수술을 결정하게 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이식비용에다가 병원관계자들은 사람 목숨 앞에서 돈 얘기만 오가고 만다. 병원에서는 보험회사랑 상의해보아라고 떠넘기지만 보험 회사 측에서도 상부에 상의를 해보아라고만 하고 보험 회사 측 또한 주립보건에다가 떠넘기고 만다. 결국 존은 스스로 마이크를 심장기증을 받기위한 대기자 명단에 올리기 위하여 여기저기서 돈을 긁어모은다. 자신이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아버리고 교회에서도 도움을 받고 주변 지인들에게서도 도움의 손길을 받는다. 그럴수록 야속하게도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유명방송기자에게까지 찾아가서 상황을 얘기해보지만 별 성과 없이 지나간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일방적으로 퇴원을 통보해버린 병원. 존은 어떠한 짓이라도 할 것 마냥 굳게 마음을 먹는다. 자존심까지 버리고 박사에게 호소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자 되돌릴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병원을 폐쇄하고 병원에 있는 환자부터 보호자 간호사 등 을 인질로 삼는다. 하지만 마음이 약한 그는 손을 다친 사람을 치료 해 줄 것을 요구하였고 응급실로 온 강도를 만나 총상을 당한 환자 또한 치료해주기를 인질로 잡혀있는 의사와 간호사에게 요구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로부터 포위당하게 되었고 경찰과의 대치중에 마음이 약해진 존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와 중이염에 걸린 아이들 안고 있는 아이엄마 등 인질들 몇 명을 밖으로 내보낸다. 존의 요구는 하나였다. 자신의 아들 마이크를 대기자 명단에 올려달라는 것이 그것 이였는데 그의 아내는 원무과담당자의 대기자 명단에 올렸다고 하는 거짓말에 속아 아무것도 모른 채 존에게 안심하라고 전화를 하게 되었고 아들 마이크와도 감동적인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방송사가 해킹을 한 시시티비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존은 속은 것을 알아채고 만다. 환풍구로 들어간 저격수가 명령만을 기다리다가 쏘려는 순간의 장면을 보고 피하려고 했지만 왼팔에 총상을 당하였다. 부서장과의 협상에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달라는 조건을 걸게 된다. 그 쯤 방송에 나왔던 존과 마이크의 대화내용을 보았던 원무과 담당은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게 된다. 아들은 존이 있는 응급실로 들어오게 되고 자신이 생각한 최선의 방법으로 자살을 마음먹게 된다.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스스로 유언장까지 남긴 존. 인질로 잡혀있는 그들조차도 그의 아들을 향한 희생정신에 감동을 받고 그가 이러한 상황이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을 죽일 생각도 그런 마음도 없었던 그는 총알이 없던 총에 단 한발의 자신에게 쏠 총알을 넣고 침대에 눕게 된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그의 아내는 신의 기적이라고 할 만큼 기막힌 타이밍에 비플러스 혈액형의 여자의 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게 된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긴 하루의 인질극이 끝날 수 있었다. 마이크는 무사히 심장을 이식을 받았고 이 심장은 영화가 시작할 무렵에 나왔던 장면인 사고를 당한 차주의 심장 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재판에 서게 된 존은 납치부당감금의 혐의의 죄만 인정받게 되었다.
존은 영웅 이였는가? 범죄자였는가? 나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기 전에 왜 존이 인질극까지 벌여야 할 상황이 왔는가? 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보고 답해 볼 시간을 가졌다.
존은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였고 가난하였지만 열심히 직장도 다니고 보험료도 꼬박꼬박 내었다. 하지만 여기서 존이 가입된 보험은 HMO 보험 이였는데 영화 속에서 간호사가 밝힌 사실에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정기적인 건강검진 시에 의사들에게 돈을 건네어 검사를 하지 말아 라고 한다했다. 제대로 된 건강검진을 받았더라면....... 존이 만약 정규직의 직장 이였다면 더 좋은 보험을 받았을 테고 치료비용은 물론 애초에 정기 건강검진을 통해서 마이크는 좀 더 일찍 심장의 이상을 찾아내어 이식해야 될 상황이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미국사회제도는 그를 외면한다. 무슨 수를 써도 되지 않자 그는 병원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마는 것이다. 누군가가 존이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일 때 무관심하지 않고 그의 손을 잡아주었더라면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존은 이러한 상황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기 위해 언론을 이용해보려고 하지만 돈이 되지 않아보였는지 외면해버린다. 하지만 존이 병원에서 인질극을 벌린 이때부터는 돈이 되어보였는지 언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다. 유명방송기자의 자신의 성공을 확신하는 장면도 나온다. 결국 돈이 문제인 것이다. 돈의 가치가 사람 목숨의 가치보다 더 중요시된다는 것을 영화에서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영화에서는 해피엔딩으로 끝이나 마이크도 살리고 최소한의 혐의만 인정되어 낮은 형량정도만 받게 되지만 그 뒷면의 실상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은 어찌되는 것일까? 신의 기적만 있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
미국의 이러한 제도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나라에서 말이 많은 민영화는 국가가 경영하던 국영기업체 또는 공법인의 경영을 생산성 향상을 위해 민간 경영자에게 넘기는 것 인데 민영화를 통해 이러한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올릴 수 있다는 주장인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 한국철도공사 민영화 등 이러한 민영화의 바람이 의료서비스에도 불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나 약사가 공무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영화의 사례처럼 병원비가 몇 억을 넘어가고 하는 상황 또한 아니다. 우리나라의 의료복지제도는 다행이도 아프면 병원을 갈 수 있는 체계이다. 영화 속에서처럼 보험증 등의 서류를 확인해야 한다거나 치료받기위해 몇 날 며칠을 줄을 서야한다거나 병원 측에서 치료거부의사를 밝히거나 하는 상황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다면 약국에서 사온 약으로 대충 때우는 식의 방법으로 해결 할지도 모른다. 요즘 다시 읽고 있는 책인 마이클 샌 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돈으로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게 된다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적 가치가 밀려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영화 뒷면에 있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생명조차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의료보장제도의 현시점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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