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기독교사]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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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시아 기독교사]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사
들어가며
리포트를 작성함에 있어 간단히 느낀 점을 표현하자면, 신검 받으러 가는 기분이 든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선 사지 멀쩡한 남자들은 다 군대를 가지만, 그 사지와 머릿속에 든 생각이 멀쩡한 가를 평가 받기위해 사전에 실행하는 신체검사. 그리고 한 학기의 절반에 도달한 지금, 중간고사를 대체해 리포트를 쓰고 있는 한 학생이, 그 동안 배운 내용과 사고했던 생각으로 다소 엉성한 모양의 도자기를 교수님 앞에 내 놓으려는 지금 이 상황이 비슷한 것 같다.
또한 나는 신검을 받으러 가기 전에, 나 스스로도 건강하다고 느껴, 1급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검사에 임했었던 거 같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건장한 청년으로 나라에 의무를 다하고 싶다는 것 하나 뿐이었다. 이처럼 중간고사 대체 리포트도 나중에 영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뛰어난 목회자가 되는 과정 중 하나로 생각하고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사」를 읽으며 내 나름대로 빚어보려고 한다.
나이난코쉬?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사」라는 책을 처음 읽으면서 오세욱 교수님의 수업 스타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 접근을 할 때 그 사건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 속에서 접근하는 것을 보고 말이다. 범상치 않은 기운도 받았달까?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의 저자인 나이난 코쉬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싶었다. 그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고, 그의 삶을 간단하게나마 돌아보면서 책에 대한 이해의 시각을 넓혀보려고 했다.
나이난 코쉬 박사는 1934년 2월 1일생으로 남인도교회 소속되어 있다. 그는 34세부터 인도기독교학생운동의 상임총무로 세상과 마주하였으며, 40세부터는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의 교회위원회실행총무와 국장으로 17년 동안 봉사하게 된다. 또한 하버드로스쿨의 방문학자로도 힘썼다. 그의 저서로는 「변화하는 세계에서의 종교적 자유」, 「국가들로 이루어진 세계 안에 있는 교회들」 등이 있다. 제목들만 보면 교회, 좀 더 크게 보면 종교와 사회 간의 관계성. 세계 속에 속해있는 종교(교회)이지만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종교(교회)의 개혁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책들은 학교도서관에서 찾을 길이 없어 아쉬웠지만, 한신대학원의 장공도서관에서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사」를 구할 수 있었다. 물론 교수님께서 내주신 리포트에 관한 부분은 1권 25-61쪽, 2권 41-111쪽으로 일부분 이지만 전체적으로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과감히 도전하게 되었다. 자연히 책을 읽으면서 많이 힘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지식이 얕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각 기구들을 지칭하는 약어조차 잘 몰랐기 때문에, 하나하나 모르는 단어를 찾으며 읽어 내려가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어 갈 때쯤에는 에큐메니컬, 특히 문외한이던 아시아 에큐메니컬에 대한 틀이 미세하게나마 잡힌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시아’ 에큐메니컬
저자는 왜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사」를 썼을까?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의 역사. 생각해보니, 나의 질문은 도서명에서 해답이 나와 있는 듯하다. 한신대학교에 입학하여 작년에 이루어진 WCC부산총회를 겪으며, 또한 선교신학개론이나 다른 신학전공수업을 들으면서 에큐메니즘과 에큐메니컬 운동의 여러 견해에 관한 일반적인 책들은 많이 접할 수 있었고 또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들은 대부분 서양화 된 기독교이다.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에 관한 책, 특히 그 역사를 다룬 책은 거의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껏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대부분 서방사람이 썼기 때문에 아시아 사람의 사관으로 쓴 책의 필요성이 절실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물음에 고민을 해보니 예수님에 대한 모습이 생각났다. 대부분 나를 포함한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겐 갈색머리에 백인 남성을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그 모습이 우리에게 친숙하고 머릿속에 박혀있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많듯이, 우리에게 도수가 맞는 안경을 쓰고 문제를 바라봐왔어야 하는데, 그동안 그러지 못하였던 것이다. 확장해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