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는 모든 것에서 진리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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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안락사는 모든 것에서 진리일 수 있는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안락사는 모든 것에서 진리일 수 있는가?
이 과제를 시작하기 전, 나는 우선 교수님께서 제시해 주신 여러 주제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주제들 중, 모든 상황에 모든 사람에게 영구히 진리일 수 있는 것이 있는 가……. 여러 시각으로 바라본 결과, 근친상간, 안락사, 거짓말, 개고기 섭취, 동성애와 동성결혼제도 중에서 언제나 진리인 것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라 결론지었다. 때로는 진리가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대상과 상황,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등에 따라 옳은 일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위의 다섯 가지 주제 중에 ‘안락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우리에게 ‘안락사’는 ‘누구’에게, 또 어떤 ‘상황’에서 진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우선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간략히 구분 지을 수 있다. ‘적극적 안락사’란 현대의학상 불치의 병에 걸려 이에 수반된 견디기 힘든 육체적 고통을 제거하기 위하여 환자 아닌 제3자가 직접적으로 생명이 단절을 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후자는, 부작위로 의술을 시술치 않거나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는 등으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인,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존엄사’는 ‘안락사’와 명백한 차이를 둘 필요가 있다. ‘존엄사’라는 개념은 생명유지 장치에 의하여 인공적으로 연명할 뿐 다시 소생할 가능성이 없는 혼수상태나 뇌사상태의 환자 또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환자가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 즉 인간다운 죽음을 맞을 권리를 보호한다는 점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방법으로 ‘안락사’가 시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 중의 하나로써, 애초에 한 인간의 삶의 끝을 결정짓는 다는 것 자체가 정말 무섭고 잔인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년간 식물인간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어느 날 기적적으로 회복하였는데, 그가 자신을 간호해 준 사람이 자신을 위해 해준 말들을 기억했다고 한다. 겉모습은 이미 죽은 이와 다름없었지만 그의 살아있는 생명체, 인간이었다. 식물인간상태의 환자는 생물학적인 생명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영혼 또한 숨 쉬고 있기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관점은 비단 식물인간뿐 아니라 사망선고나 다름없다고 여겨지는 뇌사판정을 받은 상태의 환자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의학적으로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이며 뇌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었다고 해도, 뇌를 제외한 다른 신체기능이 작동하고 있다면, 환자의 영혼은 신체 안에 여전히 숨 쉬고 있다는 뜻이므로 살아 있는 인간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그런 환자에게 연명장치를 제거하는 행위 등으로 ‘안락사’시키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을 죽이는 살인 행위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환자의 몸 안에서 영혼이 숨 쉬고 있는 한, 남은 기대수명이 짧은가 긴가는 삶의 종지부를 찍는 것에 대한 판단의 표준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환자의 기대수명이 단 몇 시간 밖에 남아 있지 않다 해도 수명이 다하는 순간까지는 ‘살아 있는’ 인간이다. 가끔 기사를 보다보면 환자 가족들의 경제적·정신적인 부담으로 인해 안락사를 원하는 사례를 볼 수 있었다. 물론 환자 가족들의 고충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아있는 인간을 인위적으로 생명을 종결시키는 행동이 정당화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문제는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혜택을 넓히는 등의 장기적인 제도적 지원방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같은 이유가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시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생명은 함부로 결정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그 누구도 한 인간의 삶을 존중해 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융통성이란 것이 필요하듯, ‘안락사’에 대한 문제도 허용될 수 있는, 어떤 환자에게 너무나도 간절한 순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우리가 ‘안락사’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때는 언제인가? 나는 이런 문제를 결정짓는 데 가장 큰 요소는 죽음을 앞둔 자신, 바로 ‘나’의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마음대로 자신의 삶을 단축시킬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예를 하나 들자면 본인이 장기기증 의사를 사전유언을 통해 분명히 밝혔고 변함없이 원하고 있는 경우엔, 뇌사상태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종결시키는 일을 고려해 볼 여지는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환자 스스로가 전혀 회복가능성이 없으며 너무나 고통스럽게 견디고 있어서 삶의 마지막을 편안하게, 차가운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떠나고 싶어 할 경우 또한 환자의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연유 때문에 ‘호스피스’라는 것도 생기지 않았는가.
이렇듯이 ‘안락사’에 대한 문제는 어느 쪽이 진리라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명이란 너무나 소중하고 존중받아야하는 것으로, 그 어떤 것도 삶의 최후를 좌지우지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