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정당한 심판 받기
오랜 군사독재 끝에 민주화운동을 거친 뒤 문명정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지배세력의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정치, 행정에 대한 국민들의 참여방법도 달라져 과거 격렬한 길거리 투쟁의 모습은 많이 사라지고,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직접적인 의사를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병폐도 많고 혼란도 많았지만 정치, 행정에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의 모습은 어떠한가? 산업화가 가속되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주체로서 기업의 역할은 사회·경제적으로, 나아가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구조에서 하에서 기업의 양적증대 및 다양화는 경제발전을 통한 물질적인 향상을 가져왔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윤추구라는 기업의 활동과정에서 적지 않은 반사회적인 행위로서 기업범죄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성장과정에서 기업의 양적팽창에만 관심이 치우친 나머지 기업경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철저한 처벌이 행해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발생한 현대차 비자금 비리와 관련한 정몽구회장의 구속안건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었다.(결국은 구속되었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 정회장의 불구속을 주장하는 입장은 현대차와 관련된 경제적 현실의 고려를 말한다.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의 대부분을 주도하는 현대차의 기업 이미지 훼손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극히 근시안적인 태도일 뿐이다. 우선 경제적 현실을 감안한 대기업에 대한 선처는 법적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다. 법은 언제나 동등하게 적용되어야한다. 사회적인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면서도 상황과 인물에 따라 법의 잣대가 바뀐다면 이것은 명백히 법의 근본적인 집행원리에 반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기업의 범죄행위에 대한 ‘법대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X파일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 한번 하지 않은 채 무혐의 처리를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적 현실을 근거로 대며, 보이지 않는 사회의 불합리성을 굳건히 하는데 법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대기업은 재벌 체제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재벌체제라는 것은 한 집안 또는 일가 친척이 여러 기업들을 족벌적 지배 체제를 유지하는 기업을 말한다. 그 만큼 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다. 그리고 그 시선의 대부분은 그들보다 사회적·경제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있다. 당연히 가진 자들의 권력의 횡포를 보며 사회적 약자들은 그들에 대한 불만과 동시에 사회전반적인 구조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법적 형평성의 흔들림은 사회의 혼란을 야기 시키게 된다. 그렇다면 대기업의 반사회적 행동에 대한 미비한 처벌이 행해질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삼성은 언론의 폭로로 결정적인 치부로 드러나고, 미비한 처벌아래 대국민 사과와 더불어 재산 일부를 떼어내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으로 수렁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 그룹의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불법·변칙 세습 논란이란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미비한 처벌은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재생산 시킬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국민이 대기업에게 느끼는 적대감의 증대와 기업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다. 예를 들어 어떤 마을에서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자. 절도는 물질적 피해뿐만 아니라 주민들 간에 불신과 갈등을 조장한다. 과거 도둑이 없어서 대문조차 만들지 않았던 이 마을은 절도 사건으로 인해 물리적인 벽뿐만 아니라 정신적 벽을 쌓게 되고 서로 간에 왕래도 적어질 것이다. 절도나 폭행 등 피해자가 한정되어있는 범죄로도 신뢰가 무너지기 쉬운데,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인경우에는 그것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어떨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기업 범죄의 미비한 처벌은 사회적 정의를 암묵시키며 경제구조의 악순환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경제적 손실은 과연 어느 정도 일까? 상장 기업들이 주가 조작과 관련해 수사를 받고 있다는 언론 보도와 함께 기업의 주가가 폭락했다는 기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03년 SK그룹 수사 당시, 검찰이 수사를 발표하기 전날인 3월 10일 SK글로벌의 주가가 6,130원 이었는데 발표 당일인 3월 11일부터 14일까지 4일간 연속 하한가를 기록해 결국 3,210원 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당시 수많은 피의자나 참고인들조차 “수사로 인해 기업 회계의 투명성이 10년 정도 앞당겨졌다” 고 자인할 정도로 파급효과가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철저한 수사 이후 외부 세력에 의해 경영권을 빼앗길 뻔했던 위기도 있었지만, 기업 경영의 불투명성과 불법 행위에 대한 정당한 처벌은 기업의 존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당장은 경제적 손실로 인해 피해를 입을지라도 앞으로를 위한 기업의 발전 방향에 법적처벌은 분명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파괴는 또 다른 창조로 이어지는 자생력을 보여준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는 말이 있듯이, 절대 권력을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경계해야한다. 대기업을 상대로 수사를 하다보면 견제와 균형을 위한 모든 제도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를 더러 확인할 수 있다. 회사의 감사나 영향력 있는 이사들, 심지어는 정의에 입각한 감시를 위한 언론조차도 기업의 CEO와 사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기업인에 대한 정부의 관대한 처벌도 국민의 도마 위에 자주 오르고 있다. 과정과 이유야 어떻든 드러난 결과를 보고 많은 시민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흔들리는 법적 형평성위에서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특권층의 비리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 정당한 법적처벌은 사회의 정의를 위해 소홀히 되면 안 되는 일이다. 올바르게 행해지는 사회의 정의를 기반으로 기업의 신뢰성 있는 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현실적인 면에서도 법적처벌은 깨끗한 기업 활동으로 장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만드는 역할을 해준다. 마지막으로 국민은 건설적인 비판을 통해 사회의 법적처벌의 정당성에 끊임없는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