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세상 속 인간 소외 - 카프카 변신, 영화 Modern Time
카프카 , 영화
요즘 세상은 일명 ‘스마트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스마트폰, 스마트 TV, 심지어 스마트한 보일러까지 등장한 시대이다. 스마트의 사전적 의미는 영리한, 눈치 빠른, 현명한 등으로, 세련되고 똑똑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좀 더 다른 의미로서 ‘스마트’가 사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의미는 바로 ‘필수적인’이다. 이젠 스마트한 것이 우리에게 필수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고 해도 나오는 답은 두 가지로 정해져있다. 첫 번째로 편하니까.
다음은 다른 사람이 다 쓰니까 나도. 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이 대답에서 인간은 소외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스마트한 사람이 되면, 스마트한 세상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스마트’라는 단어에 빠져 들었다는 것, 이것 자체가 인간 소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인간 소외의 예를 카프카의 과 찰리 채플린의 에서 찾아보았는데, 이를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근대 산업 사회에서 인간 소외의 4가지 형태를 기준으로 정리해보았다.
먼저,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보았다.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는 노동자가 노동생산물에 예속되는 것으로, 노동자가 오로지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근대 산업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 소외의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하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에서 점심 먹여주는 기계의 시연을 하는 장면이다. 찰리 채플린은 사장의 손짓 하나에 기계에 장착된다.(벨트로 움직이지 못하게 묶는 것이 하나의 부속품으로 그를 장착하는 모습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기계가 고장이 나서 얼굴을 계속 맞고, 먹는 행동을 반복하는 등의 인간으로서 당해서는 안 되는 일을 당한다. 이것이 바로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이다. 찰리 채플린은 인간이 아닌, 점심 먹여주는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지 확인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만 사용된 것이다.
또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는 장면이 찰리 채플린이 기계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다. 이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으로 뽑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생산물에 예속된 인간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사를 조이는 담당인 찰리 채플린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놓치지만, 멈추지 못하고 계속 따라가다 결국 기계 속으로 들어간다.
위의 장면들은 몇 번을 보았지만, 언제나 웃을 수 없었다. 웃기에는 현실의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보았던 ‘방가?방가!’라는 영화에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공장장은 외친다. “오늘 의자 5,000개를 못 만들면, 집에 못 간다.”라고. 여기서 노동자들은 의자 5,000개를 만들기 위한 기계로서 취급받을 뿐이다. 즉, 영화와는 다른 형태의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런 소외는 주로 가난하고 사회에서 힘없는 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노동 그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노동자의 자기 소외는 노동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을 위한 것일 때 겪는 소외이다. 이는 위에서 이야기한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와 유사한 점이 있다. 생산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이면서 결국 생산물이 노동자의 것이 될 수 없을 때 겪는 것이 바로 노동 그자체로부터 발생하는 노동자의 자기 소외이다.
카프카의 에서 그 예를 찾아보면, 외판원인 그레고르는 자신이 파는 상품을 만들지는 않지만 상품을 팔기 위해 그럴듯하게 포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팔기 위해 집과는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야 한다. 이렇게 힘들게 물건을 팔지만, 그레고르는 자신이 파는 물건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있지 않다. 가계 빚을 빨리 갚고 나면, 아주 적은 돈만 남는다. 또한 그레고르는 외판 일에 대해 ‘이 얼마나 지긋지긋한 일인가!’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외판원을 그만 두고 싶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레고르는 그만 둘 수 없다. 그레고르는 가계 빚을 갚아야한다는 이유로 일을 지속하고 있을 뿐이었다.
에서도 이와 같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전기철강주식회사의 사장이 하라는 대로 속도를 올리는 사람, 그 속도에 맞춰 작업 속도를 조절해야하는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은 정말 기계처럼 일을 한다. 찰리 채플린을 잡으려 할 때도 기계를 작동시키면 바로 작업대 앞으로 선다. 이 장면을 보면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동에 대한 아무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으며, 오로지 물건을 많이 생산해내고 돈을 받기 위해 기계처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세 번째, 유적 존재로부터 인간의 소외는 의식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커서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모두 자신이 꿈꾸는 이상의 직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자아실현의 목적 없이 단순하게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활동으로 노동을 할 때 인간은 소외되고,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인간과 동물이 다를 게 없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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