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상담치료] Socrates & Heraclitus 비교분석 - 자살과 무기력증
Socrates & Heraclitus 비교분석
자살과 무기력증
Ⅰ. Socrates & Heraclitus; 나는 누구인가?
자아의 문제는 상담 철학분야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다루어지는 주제다. 또한 이 주제의 범위와 이 주제를 다룬 철학자들의 이론이 광범위한 만큼, 내담자에게 하나의 모델로서 자아를 제시 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모델을 내담자에게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상담자가 이들 철학자들의 다양한 자아의 모델을 제시하다 보면 내담자에게 혼란을 줄 가능성은 없을까?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자아의 모델을 찾아가는 것이 상담 철학에서 적합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소크라테스와 헤라클레이투스의 원리를 비교 통합하여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의 철학 상담적 의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너 자신을 알라!
우리는 이 이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델포이 신전에서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신탁을 받고 거리를 헤매며 질문을 던진 한 남자.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은 현자. 많은 이들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은 성인,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광인이었던 세상의 이방인. 마지막 순간에도 철학은 죽음에 이르는 연습이라며 처연히 독배를 마신 한 인간. 그는 소크라테스다. 우리는 그가 남긴 말, ‘너 자신을 알라!’를 너무나 쉽게 그리고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를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누구나 자아에 대해 정의 내리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갖고 있다. 우리는 모두 오디세우스가 되어 일평생을 이 자아 찾기의 항해에 몸을 싣는다. 역사를 통틀어 수 많은 철학자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아를 정의 하는데 골몰했다. 어떤 철학자는 자아를 생각하는 존재로, 어떤 철학자는 감각의 다발로, 이념으로, 또는 기계로 정의 내렸다. 하지만 우리는 이 논쟁의 진경 속에서 언제나 다시 한 번 길을 잃고 만다. ‘도대체, 그래서 나는 무엇이냔 말인가!’
때때로 질문은 해답이 없는 말장난처럼 보인다. 소크라테스의 질문도 그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산파술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이들을 실토로 이끌었던 그의 대화법이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했다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언뜻 보기엔 그의 대화법이 그저 질문의 연속일 뿐 정해진 답이 없거나, 혹은 정해진 답으로 대화를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언제 질문을 멈춰야 하는지, 보통 지자가 아니고서야 알 수가 없으며 상대방을 더욱 혼란 속으로 밀어 넣거나 화를 돋울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자아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이 문제가 해결 가능한지 알 길이 없다. 너무나 많은 이론들과 사상들에 둘려 싸여 고아 신세가 되어버린 느낌마저 갖게 한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우리는 질문을 멈춰야 하는 것일까?
만물은 유전한다.
헤라클라이투스의 로고스는 결코 머물지 않는다. 그의 이 로고스의 원리에 따르면, 자아는 변화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우리를 가장 밀접하게 둘러싼 환경은 시간과 함께 흐른다. 그리고 시간은, 삶은 우리를 관통해 흐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문구는 이 로고스의 변화하는 속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우리는 그 시간의 흐름에 내 맡겨진 존재로 삶을 유영한다. 때문에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것은, 결국 강물이 흘러가 내게 현재 흘러온 강물이 예전의 그 강물이 아니듯, 이전에 강에 발을 담근 나도 이미 그때의 내가 아니라는 뜻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강물도 나도 변해,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 이 시간 속에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매일 바뀌어 간다. 아니, 매 분, 매 초 바뀌어 간다. 생물학적으로도 나의 세포는 매일 죽고 살고 분열하고 있으며, 정신적인 나도 어제의 고민과 오늘의 고민이, 매 시간의 생각이 달라진다. 이것은 또한 내가 외부로부터 어떠한 자극을 받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우리의 자아란 오직 상호적인 영향 관계 속에서 변화하고 또 이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서 ‘고정된 나는 없다(空)’라고 말하는 동양의 사고와도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혼란을 겪는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있을 것이다.’, ‘존재한다.’라고 여기는 여기, 이 자리에서 숨을 쉬는 나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나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나는 없다니?! 헤라클레이투스는 이 자아를 움직임과 변화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공간을 점하고 존재할 뿐, 고정되어 있지는 않다. 때문에 우리의 삶과 자아는 사건의 연속이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말해, 우리가 찾고자 하는 자아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무한히 변화하는 것이므로 고정된 ‘나’를 찾는 이 여정이 환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 속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저 맥락 속에서 이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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