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시대 에릭 홉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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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시대 - 에릭 홉스봄
에릭 홉스봄은 영국인 유대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 유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열두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었고, 그 후, 그는 많은 곳에서 유목민 생활을 하며 지냈다. 에릭 홉스봄은 열여섯 살 때 역사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뒤로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에게도 힘들었던 시절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시절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가 그런 힘들고 우울한 상황을 큰 고통 없이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현실세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주로 호기심, 탐구, 고독한 독서, 관찰, 비교, 실험 등을 하면서 보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에릭 홉스봄은 유목민 생활을 하던 곳 중 하나인 베를린에서 생활 하면서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았다. 그는 학생 때부터 헌신했던 정치적 활동 없이는 인생에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 그의 삶에 감성을 심어준 것이 바로 재즈이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성에 반해버렸던 것 같다.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많은 열망 중에 공산주의가 그리는 이상 낙원은 세 가지 점에서 달랐다. 첫째, 마르크스주의는 우리가 기필코 승리한다는 사실을 과학적 방법으로 입증했다. 그것은 1940년대까지 세계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승리를 거두었고 혁명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로 검증되고 입증된 예언이었다. 둘째, 국제주의가 살아있었다. 우리의 운동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지 특수한 집단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의 이상은 개인의 이기심이나 집단의 이기심을 뛰어넘었다. 처음에는 시온주의에 뛰어들었다가 나중에 공산주의로 돌아선 젊은 유대인이 적지 않았던 것은 유대인이 겪는 고통이 아무리 컸어도 그것은 온 세상에 만연한 억압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여전히 소련을 혁명의 필수 불가결한 후원자로 보았다. 공산주의자는 물론이거니와 식민지에서 벗어났거나 벗어나려고 애쓰던 지역의 정부와 운동도 모두 미래가 소련의 존립에 달려 있었다. 공산주의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소련을 지원하고 수호하는 것이 여전히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그가 공산당에 실제로 가입한 것은 1936년 이었으나 정서적으로는 1932년 베를린에서 10대 소년으로 공산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에 제아무리 소련을 비판하고 회의한다 하더라도 세계 혁명과 그 거점인 10월 혁명에 대한 희망과 이어져 있던 세대에 들어갔다. 성장한 곳의 풍토와 혁명 운동에 투신한 시기가 남들하고 달랐기 때문에 그는 홀가분하게 공산당을 박차고 나올 수가 없었다.
실력 있는 역사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역사가는 아무리 먼 과거를 다룬다 하더라도 과거를 탐구하다보면 결국 현재와 눈앞의 사안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