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을 읽고
조각으로만 몇 번 읽어보았던 소설이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즈음엔 천천히 씹어 먹지 않았던 탓에 어떤 맛도 느끼지 못했던 글이다. 아마 유명한 소설이라기에 글자를 종이에 그대로 놓아둔 채 우걱우걱 삼키기만 했던 것 같다. 이번엔 아니다. 지금부터 쓰려는 독후감은 아주 불편하고 기분이 싸늘해지는 글이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느꼈던 감정처럼.
대학교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궁금해진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정말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을까? 그러니까 필요에 의한 사회적인 관계 말고. 남을 이해하고 남을 생각하면서 살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 그것이 정말 불행일까?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순수하게 이타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마 나도 그렇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주입식으로 그 답을 들어왔을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그런데 왜 그래야 하는지 진심으로 느끼면서 살아가진 않는다.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그보다 한술 더 떠서 아예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단정짓고, 타인은 심지어 가족까지도 결국에, 마지막에는, 필요에 의해 나와 상리공생을 하는 사이일 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을 단 한 번도 밖으로 내뱉은 적은 없지만 말이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것도 무척이나 불편하고 부끄럽다.)
그렇지만 대학 강의 시간에 들었던 많은 현명하신 분들은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다. 동양 철학 시간에 배운 맹자님도 ‘선’에 대해 이야기 하셨고, 교육의 역사와 철학 시간에 배운 소크라테스도 ‘도덕’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또한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는 사람들과 내가 존경하는 사람들도 다들.......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맞아. 맞는데 나는 아직 모르겠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아직 모른다. 왜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러니까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몇 가지 있다.
수험생 시절 내가 목표하는 길이 있었는데 당시의 나는 그 열망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친구들이 ‘너 그러다가 그 대학 못 가면 미쳐버릴까 걱정된다’ 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재수까지 했다. 그런데 재수를 결정한 직후에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그건 정말이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희생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수능이 끝날 때까지 정해진 시간 외에는 연락도 하지 않고 가끔씩만 만나기로 했다. 그렇지만 점점 나는 그 짧은 시간조차 아까워졌고 남자친구는 그렇게 줄여가는 시간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무리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어도 결국 난 내가 먼저였다. 나는 내가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는 남자친구가 점점 미워졌다. 그리고 이렇게 이기적인 내 자신도 정말 미워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결국 이기적인 사람이구나. 그렇게나 좋아했던 사람도 나에게 도움이 안되면 한 순간에 마음을 버리는 사람이었구나. 결국 나는 문을 꼭 닫고 혼자 사는 사람이구나. 이런 내 모습에 무언가 결핍을 느끼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난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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